"인사시스템 문제 or 실용주의 한계?"

머니투데이 송기용 기자 2008.02.27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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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정부,장관 후보자 3명 낙마로 총체적 난맥상 드러내

불과 사흘만에 3명의 장관 후보자가 불명예 퇴진했다. 그것도 힘이 가장 세다는 정권 출범 전후에 벌어진 사상 초유의 사태다. 이정도 선에서 서둘러 문제를 수습하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입은 내상(內傷)은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새 정부 출범의 프리미엄을 누리기는 커녕 '강부자(강남 땅부자)'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등 조롱섞인 신조어가 회자될 정도로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따놓은 당상'이라던 4.9총선의 압승은 물건너갔고 도덕성 훼손으로 통치기반마저 흔들릴 정도다. 이때문에 단순히 인사검증 시스템 차원을 넘어 정권 전반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비판이다.



◇"장관 후보자 맞아? 비리의혹 꼬리물어"= 남주홍 통일부,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결국 27일 낙마했다. 장관 내정 발표 직후부터 부적격 시비가 제기됐던 두 사람은 새로운 의혹이 매일같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초강경 대북관으로 일찌감치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던 남 후보자는 자칭 '보수주의자'라는 주장에 걸맞지 않은 자녀들의 이중국적으로 국가관을 의심받았다. 이어 자녀 교육비 부당환급, 부동산 투기, 논문건수 허위신고 등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박 후보자도 김포시 양촌면 일대 절대농지 매입 등 잇따른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환경부장관 발탁 배경인 활발한 환경,시민단체 경력이 훼손됐다. 게다가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 것일 뿐 투기와는 상관없다"는 어처구니 없는 해명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전남 신안군 증도면 땅 투기의혹 등이 추가되면서 결국 낙마했다.

3명의 후보자가 물러났지만 나머지 장관들에 쏟아지는 의혹도 만만치 않다. '5공 시절 정화사업 유공 표창,논문 중복게재,공금유용'(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장관) '불법증여,세금포탈'(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중앙노동위원 허위경력'(이영희 노동부) '아들 군복무 특혜'(원세훈 행정안전부) 등 거의 모든 장관 후보자들이 크고 작은 흠집을 안고 있다.

◇"인사검증 구멍,실용주의 모두 문제"= 이명박 정부는 지난 2달간 검찰·경찰·국세청 등 사정기관 소속 파견공무원 15명으로 ‘검증팀’을 운용해 5000여명의 후보군을 검증했다. 학력 등 주요 경력과 재산형성 전 과정을 뒤져 상당수 후보자가 탈락했다고 한다. 하지만 터져나오는 의혹을 보면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다는 설명이 의심스러울 뿐이다.


이에따라 현 정부의 인사검증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인사검증시스템이 안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일로 보인다"며 "향후 공직인선 때는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돼서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이와관련, 구멍뚫린 검증시스템도 문제지만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통합민주당 임종석 의원은 "이정도로 문제 많은 인사들을 뽑았다는 건 단순히 인사검증 시스템의 문제로만 보기 어렵다"며 "'실용'이라는 관점에서 '재산많은게 뭐가 문제냐,일만 잘하면 됐지..'라고 느슨하게 생각한 것이 인사검증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현 정부측은 장관 후보자들의 문제가 드러난 초기만해도 "중요한 것은 능력과 국가관이며, 재산이 많다고 정당한 부까지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감싸기도 했다.

◇"심각한 민심이반 차단 나서"= 이명박 대통령이 이춘호 후보가 낙마한지 불과 사흘만에 또다시 2명을 교체한 것은 민심이반 현상을 더이상 방치할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다. 3명의 불명예 퇴진으로 체면이 구겨지긴 하겠지만 이 정도 선에서 막지 않을 경우 걷잡을수 없다는 우려가 작용했다.

실제로 한달여 앞으로 다가온 총선 결과가 위협받고 있다. 한나라당은 "하루밤 자고 날때마다 수도권 의석 10개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죽는 소리를 하고 있다. 매일 아침 언론에 터져나오는 장관 후보자들의 부정비리와 서민들 속터지게 하는 엉뚱한 해명이 표를 깍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을 압박했다. 강재섭 대표,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날 이 대통령과 1시간반 동안 긴급 조찬회동을 갖고 "문제가 있는 일부 장관 후보자들의 자진사퇴 조치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 대통령은 고심끝에 자진사퇴 결단을 내렸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고심 끝에 대승적 차원에서 두 장관 후보자들의 자진사퇴 의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며 "두 분의 용퇴를 계기로 국회도 새 정부가 국정공백없이 순조롭게 출범할수 있도록 뜻을 모아달라"고 밝혔다.

그러나 기세를 탄 야당이 이정도 선에서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장관 인선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계속되면서 내각조각 지연이 장기화되는 등 상당기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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