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그때 "삼성電 채권 전량 회수하겠다"

머니투데이 오동희 기자 2008.02.2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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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차 소송 2라운드 돌입..계약서 '채권단 강압이냐 vs 삼성 자의냐' 쟁점

삼성그룹과 삼성차 채권단이 지난달 31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재판장 김재복 부장판사)에서 내려진 1심 판결에 대한 항소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삼성이 지난 26일 항소장을 제출하는 등 양측 모두 항소 방침을 밝히면서 2년여를 끌어온 삼성차 소송이 2라운드를 맞게 됐다.

그동안 진행돼 온 양측간 논쟁의 핵심은 양측이 지난 1999년 8월 맺은 '합의이행약정서'가 유효하냐는 것이다.



◇삼성전자 부도 내겠다 강압 주장=유효성의 여부는 이 계약서의 작성 과정에서 채권단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강압적으로 계약 체결을 종용했느냐에 달려있다. 1심 법원이 계약서는 유효하기 때문에 채권단이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을 현금화해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고 삼성은 이에 대해 항소 방침을 정했다. 이유는 계약서 체결당시 강압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27일 삼성 고위 관계자는 "1999년 당시 채권단의 최고위 인사가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러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삼성전자 (63,000원 ▼100 -0.16%) 등 계열사의 채권을 전량 회수하겠다는 강압이 있었다"며 "이는 삼성전자를 부도내겠다는 말과 같았다"고 했다.



1997년에 삼성전자는 자본잠식 상태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하던 시기였고, 당시 IMF 구제 금융 상황에서 삼성전자도 자금의 여력이 없었다.

2년 뒤인 1999년에는 닷컴 열풍으로 회복의 조짐을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주거래 은행이 채권을 전량 회수하겠다는 '강압(?)은 '부도를 내겠다'는 의지와 마찬가지로 기업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은 것이라는 삼성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약정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해오고 있다.

이같은 취지의 발언은 윤종용 부회장이 지난 2005년 10월 국회 재정경제위의 국정감사에 참석해 비슷한 발언을 한 바 있다. 당시 윤 부회장은 "채권단이 '손실 보전에 합의하지 않으면 삼성계열사에 금융제재를 가하겠다며 압력을 가해 어쩔 수없이 합의한 것"이라고 밝혔었다.


윤 부회장은 "신규대출 거부, 채권회수, 수출입 외환 정지 등 3단계 제재안이 거론돼 금융제대를 받으면 큰 어려움에 빠질 수 있어 합의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강압이 있었음을 강조했었다.

◇강압 아닌 빅딜 약정에 따른 조치 주장=이에 대해 채권단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채권단은 계약서 작성 과정에서의 강압에 대해 '채권을 회수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은 1999년 합의 이행 약정서를 체결하기 1년전인 1998년 김대중 정부 당시 '빅딜' 과정에서 맺은 '재무구조 개선 약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김대중 정부 당시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유화 등 중복되는 산업에 대한 빅딜 정책에 따라 98년에 기업과 채권단간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했고, 이 약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신규대출 금지와 기존 여신 조건의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98년 재무구조 개선 약정에 따라 채권단은 여신에 대한 규제를 할 수 있도록 돼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조치의 일환이지 강압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DJ 정부 당시의 빅딜정책이 시장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부의 강압적 정책 추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어서 이후 반도체와 자동차 업계에 빅딜의 후유증이 컸던 만큼 이 당시의 약정 또한 논란의 도마위에 올라 있는 상황이다.



◇주식회사의 유한 책임 공방=삼성차 문제와 관련 삼성측이 도의적 책임을 다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채권단이 도의적 책임을 걸고 넘어지고 있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실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때 주식회사의 책임범위는 주주의 경우 투자손실로 한정된다"며 "금융기관이 기업에 돈을 빌려줄 때 꼼꼼히 따져보고 담보도 잡고 해서 빌려주고 손실이 나면 결국 빌려준 쪽이 책임지는 문제가 아니냐"고 꼬집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이 삼성차의 주주도 아닌 상황에서 도의적 책임을 져 삼성생명주식을 채권단에 2조 4000억원(350만주) 규모를 증여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고 말했다.



IMF 당시 법정관리에 들어간 대우 그룹 등 대부분의 기업은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을 투입해 회생을 시도했지만, 삼성차의 경우 혈세를 투입하는 대신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들였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이를 회수하느냐 못하느냐는 전적으로 채권단이 책임이 져야 했다는 것.

이와 관련 채권단 측은 "삼성이 공적자금 투입에 대한 담보(합의이행약정서 체결)를 했기 때문에 2조 4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결국 채권단은 삼성차에 빌려준 채권을 회수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 회장이 사재로 준 삼성생명 주식이 없었다면 또한 고스란히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는 게 삼성 측과 재계의 주장이다.



이처럼 양측이 한발도 물러서지 않음에 따라 양측의 2라운드 법정 공방은 또 향후 수년간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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