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준(67) 씨 ⓒ서울대학교
이한준 씨가 대학에 입학한 것은 지난 1962년. 서울대 중문학과 새내기로 입학해 미래를 향한 꿈에 부풀었었지만 희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씩 끼니를 거를 정도로 가난했던 집안 환경 때문에 등록금을 더 이상 낼 수 없었다. 이 씨는 입학 한 학기 만에 휴학을 선택했다. 그 때만 해도 1년간 돈을 벌어 다시 대학에 다닐 생각이었다.
제대 후에는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야 했다. 그가 처음 사회생활을 '제대로' 시작한 것은 1970년. 경제기획원에 공무원 자격시험을 보고 들어가 5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이후 6년간은 외국계 기업으로 옮겨 행정업무를 봤다. 좋은 회사였지만 개인 사업에 대한 욕심이 생겨 1981년, 그 동안 모은 자금으로 유통회사를 차렸다. 그러나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법무사 생활로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되자 '미처 마치지 못했던 젊은 날의 숙제'가 떠올랐다. 떨리는 마음으로 교정에 들어섰던 마음도 생각났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아들이 갔으면 하는 길에 대해' 남기셨던 유언도 떠올랐다. 이 씨는 2004년 재입학 절차를 밟아 학교로 돌아갔다. 2004년 9월 그는 42년만에 캠퍼스를 밟았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종교학도 복수 전공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담담한 듯 말을 이어갔지만 가족 얘기가 나오자 목소리의 톤이 한결 올라갔다. "제가 졸업을 한다니 아들과 딸이 무척 좋아합니다. 그런 아버지가 될 수 있어서 좋지요, 이미 졸업을 한 62학번 동기들도 함께 와서 축하해 주기로 했습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그는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한 자전적 소설을 쓰고 있다고 했다. 평범한 시민으로 태어났지만 순탄치 만은 않았던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서다. 책 집필을 마친 내년 초쯤에는 신학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이다.
"젊은 학생들에 비해 체력도 딸리고 기억력도 좋지 않으니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예전과는 또 다르게 팽팽한 긴장감을 갖고 공부하는 대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니 제가 얻는 것이 더 많은 걸요."
중문학 전공자 답게 그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한 구절로 앞으로의 계획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