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없으면 병원 못간다'式 당연지정제 논란

머니투데이 최은미 기자 2008.02.2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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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된 의견개진이 아니라 당연지정제가 완화되면 돈없는 서민들은 병원에 갈 수 없다는 식의 흑백논리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다.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가 요양기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론이 들썩이고 있다. 시민단체부터 일부 정치권까지 돈없으면 병원 못간다는 식의 극단적인 논리를 펼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당연지정제가 완화를 넘어 아예 폐지된다하더라도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이탈하는 병원은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건강보험의 재정규모로 봤을때 자신있게 이탈할 수 있는 의료기관은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권용진 서울의대 의료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의사)은 "당연지정제에 반대하는 의사들은 없지만 당연지정제가 폐지된다고 건강보험환자를 받지 않을 의사들도 없을 것"이라며 "당연지정제 완화 논의는 보험자와 의료공급자 간 계약시스템을 바꾸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근의 논쟁에 대해 "돈없으면 병원 못간다는 식의 정치대립으로 끌고가는 것은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보험인 건강보험은 전국민을 가입자로 보유하고 있다. 2007년 기준 한해 진료비로 지출되는 예산이 24조원(본인부담금 제외)에 달한다. 약국 등으로 나가는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한해 17조원을 웃도는 비용을 의료기관에 지급되고 있다. 지난해 전체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 지급된 액수는 10조원을 훌쩍 넘는다. 개별병원 한해 수입 중 절반에 달하는 금액이다.

한 종합병원 관계자는 "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진료를 실시하고 있다"며 "건강보험 재정이 의료기관 수입의 원천인 상황에서 건강보험 환자를 받지 않겠다고 나설 의료기관은 극히 드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해당 진료를 건강보험을 적용시키려는 의사들의 시각을 반영해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지난해 8월 행정법원으로부터 '비만진료를 건강보험 적용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판결을 이끌어 낸 것은 다름아닌 비만전문클리닉 원장들이었다. 건강보험에서 제되됐던 비만클리닉이 건강보험을 적용받고자 행정소송까지 불사했던 것이다.


건강보험 적용 여부가 의료기관 수익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비급여로 자유롭게 환자를 받는 것보다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으며 약간의 규제를 감수하더라도 더 많은 환자를 받는 것이 의료기관에 이득이라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연지정제 완화는 건강보험 재정 적자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재정에 한계가 있는 만큼 건강보험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를 정해야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 것. 따라서 당연지정제 완화는 정부입장에서보면 건강한 의료기관을 선별, 채택된 곳만 건강보험 환자를 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의사협회는 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반대하는가. 의협은 당연지정제가 시행된 1977년부터 이 제도에 반대해왔다. 건강보험에 적용을 받는 대신 정해진 급여기준에 따라야할 뿐아니라 건강보험 수가협상에서도 발언권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발언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카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대부분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환자를 보지 않을 경우 생존자체가 불가능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지정제 폐지에 찬성하는 것은 수가협상에서 정부를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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