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인하정책, 안떨어지는 약가

김창엽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2008.02.2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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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의 건강보험이야기③]정책도 R&D 투자 필요

몇 해 전 정부는 의사의 처방이 없어도 되는 일반약의 일부를 보험에서 제외하는, 그래서 그 약값은 환자가 부담하는 제도를 시작했다. 건강보험 재정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자고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어떤 정책이든 효과가 중요하다. 이 경우에도 상식적인 예상으로는 건보에서 부담하는 전체 약값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야 한다. 그 전까지 건보가 부담하던 돈이 환자의 주머니에서 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이상하게도 건보의 약값 지출을 줄이는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이다.



제도 실시 초기라 장기 효과는 두고 볼 일이지만, 돌이켜 보면 이런 결과가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바로 인간의 행동에 그 답이 있다. 그전까지 쓰던 일반약을 보험에서 제외하면 환자의 본인 부담이 는다. 환자는 불만스러울 것이고 약을 처방하는 의사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처방하는 약의 종류를 바꾸게 된다. 비슷한 효과가 있는 약인데 보험에서 제외되지 않은 약이 있다면, 이제는 이 약이 비싸진 그 전의 약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작은 것 같은 정책 하나에도 의사와 환자의 인센티브와 이에 따른 행동 변화가 작동한다.



그러나 오늘 할 말은 이 제도의 내용이나 효과가 아니다. 사례를 들었을 뿐,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작 따로 있다. 다름 아니라 우리 사회가 건보 제도의 운영이나 정책 결정과정에서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앞에서 든 사례가 아주 드물게 있는 일이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4800만 전국민을 포함하고, 지출이 일년에 GDP의 4%를 넘으며, 10억 건이 넘는 진료가 이루어지는 사회제도가 바로 건강보험이다. 의사결정이 복잡하고 어렵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미묘한 인간의 심리와 행동과 연관되어 있으니 모르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어떤 분야든 모르는 것이 많으면 연구개발(R&D)로 해결한다. 연구개발 투자가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재 국가적으로는 GDP의 약 3%를 연구개발에 쓰고 있고, 10대 대기업은 매출의 10% 내외를 지출한다. 그에 비해 건강보험의 연구개발 투자는 계산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다.


혁신적 신기술을 추구하는 과학기술 분야도 아닌데 건강보험과 비교할 일은 아니라는 반응이 나올 법하다. 그러나 추구하는 바가 다를 리 없다. 연구개발 투자의 부진은 연구자 풀을 좁히고 필연적으로 연구성과를 줄인다. ‘아는’ 것이 많아지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산출물이 나오기 어렵다. 건강보험 연구투자의 산출물이 과학기술과 조금 다를 뿐이다.

사회현상을 탐구하는 연구개발은 효율성과 성과를 의심받는 일이 많다. 그러나 이는 목표와 운영을 명확하게 하면 해결될 일이다. 1억원의 연구개발 투자로 10억원의 건보재정을 절감할 수 있다면 투자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러면 앞에서 사례로 든 정책은 어땠을까. 아마도 충분히 투자비용을 회수했으리라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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