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컨대 책임의 크기를 100으로 놓고, 구성원 수를 50이라고 해 보자. 모두 100의 책임감을 느끼기보다 각자의 몫인 2(100/50)만 지려 하고, 마찬가지로 구성원이 10만명으로 늘어나면 책임감은 0.001로 떨어져 거의 사라진다는 것이다.
유동화증권을 발행하면 기초자산인 대출채권이 회수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도 추가 대출을 할 수 있다. 유동화는 신용창출을 통해 금융 소비자의 혜택을 늘릴 수 있는 첨단 기법으로 부각됐고, 그 대상도 모기지론은 물론 자동차 할부나 신용카드론 등으로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기초자산에 이상이 생기면서 유동화 '사슬'에 매인 투자자나 금융회사들이 뒤늦게 큰 손실을 보았고, 급기야 글로벌 신용경색에 이어 경기둔화까지 걱정하게 됐다. 위험(책임)의 과도한 분산이 무위험(무책임)을 유도해 경제에 충격을 준 셈이다.
실제 모기지론의 부실한 신용관리가 부동산 버블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실증연구도 나오고 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가 전한 시카고대 비즈니스스쿨의 아티브 마이안 교수 연구에 따르면 부동산 투자붐이 일었던 2001년부터 2005년 사이 모기지론 승인율이 급등한 지역을 되짚어보니 96년 거부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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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지역의 소득이나 고용수준이 상대적으로 개선된 것이 아니었다. 유동화에 힘입어 모기지론 시장이 커지면서 대출기준이 완화된 영향이 컸다. 정작 시장 여건이 급변하자 부도율은 이 지역에서 가장 높았다. 첨단 금융기법이 낳은 비극의 하나다.
금융회사나 유동화증권을 매입한 투자자들이 위험을 제대로 평가하고 관리도 엄격히 했더라면 부실한 대출을 상당부분 억제했을 것이다. 물론 때늦은 자성이며, 부동산 붐 당시 이 문제를 제기했더라도 금융 문외한이라는 지적만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책임의 애매한 처리가 낳는 폐해가 비단 금융시장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국보 1호였던 숭례문이 어처구니 없이 전소된 것을 놓고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 관련 지방자치단체가 책임 떠넘기기 공방을 벌였다.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두지 않은 채 책임을 대충 나눠놓았다는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