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폰기힐스를 보면 용산이 보인다"

도쿄=김정태 기자 2008.02.1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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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부동산]

2000년 초까지만 해도 일본은 '버블경제'의 붕괴로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오피스텔, 상가 등 상업건물은 점차 슬럼화되는 도심지는 '무덤'이었다.

최근 몇 년사이 경기가 점차 되살아나고 있지만 도쿄 롯폰기에서 마주한 일본의 모습은 전혀 예상 밖이다. '잃어버린 10년'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롯폰기힐스는 새로운 일본 경제의 모습을 상징하는 '아이콘'처럼 보였다.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전경↑롯폰기힐스 모리타워 전경


롯폰기힐스, 일본 경제의 새 '아이콘' 부상

프랑스 작가가 만든 '마만'이란 거미모형의 조각상 앞에 우뚝 서 있는 53층 높이의 모리타워는 롯폰기힐스가 강남의 고급 주상복합아파트 단지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란 선입견을 없애주는 상징물이다.



모리타워 등 오피스, 주거·상업시설 등의 빌딩군 속 사이로 심어진 7만여그루의 나무가 도심 전체를 휘감싸고 있다. 대지면적 11만5500㎡ 규모의 나지막한 언덕에 거주자와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예술과 쇼핑, 휴식공간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모리타워 앞 연못을 중심으로 일본식 정원인 '모리정원'과 젊은이 광장인 '할리우드 뷰티 플라자'는 일본의 전통과 새로운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을 상징하고 있다.

롯폰기힐스의 동서에 가로수로 조성된 케야키자카 안에는 최고 43층 4개동의 최고급 아파트인 ‘롯본기힐스레지던스’(840가구)가 세워져 있고 주변 길을 따라 명품 브랜드숍, 전통 음식점, 분위기있는 카페들로 채워져 있다.


모리타워 전망대 옆으로 임대료가 가장 비싸다는 52층과 53층에는 미술관이 자리잡고 있다. 인근에는 아사히 TV방송국과 야외 스튜디오, 21층짜리 특급호텔인 그랜드 하얏트 토쿄가 세워져 있다. 롯본기힐스를 왜 '토쿄 속의 작은 토쿄'라고 부르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힐스'를 보면 日도심재생사업 보인다

롯폰기힐스는 개발 당시부터 컨셉트가 '일하고 놀고 잠자는 것을 한 동네서 다 끝낸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것은 롯폰기 힐스를 조성한 모리빌딩의 모리 미노루 회장이다. 70, 80년대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부동산 투자붐이 일면서 토쿄 도심지의 땅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으며 도시 기능은 땅값이 싼 외곽으로 분산됐다.

도심 공동화 현상이 나타났고 버블경제 붕괴이후 급격히 슬럼화되기 시작했다. 모리 회장은 "슬럼화된 토쿄 도심의 구조를 뉴욕의 맨하튼식으로 바꿔야 한다"며 롯폰기 6쵸메 지역을 업무·주거·문화·교육기능 등이 집적화된 복합단지로 개발했다.

이것이 최초로 민간에 의해 개발된 도심재생사업이며 성공적 모델이란 세계적 평가를 받았다.

모리빌딩은 시공능력이나 브랜드 인지도에서 일본 제일이다. 1955년 모리부동산으로 시작한 모리빌딩은 빌딩사업을 주력으로 전국적인 사업보다 도쿄 미나토구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1부터 37까지 번호가 붙어 있는 빌딩과 일본 도심재개발의 효시인 아크힐스, 도쿄 상징인 롯본기힐스가 모두 모리빌딩 소유다.

문화 잘 담으면 세계적 관광명소된다

이 같은 롯폰기힐스의 성공은 토쿄 도심을 재생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롯폰기힐스와 인접한 미드타운이 그런 탄력을 받은 곳이다. 미드타운은 롯폰기 지역의 옛 방위청 부지를 6개 부동산개발업체가 3700억엔(3조3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최첨단 대형 복합단지다. 지난해 3월에 개장된 미드타워는 연간 3000만명이 다녀가는 일본 새로운 명소로 급부상했다.

↑롯폰기 옛 방위청 부지에 세워진 토쿄 미드타운↑롯폰기 옛 방위청 부지에 세워진 토쿄 미드타운
이 곳 역시 고급 아파트와 리츠 칼튼호텔, 오피스, 쇼핑몰,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어 언뜻 외관상으로는 롯폰기힐스와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미드타운의 대지 면적(10만 2000㎡)은 롯폰기힐스보다 작다. 하지만 모리타워보다 높은 248m로 일본 최고 높이를 기록하며 일단 기선을 잡았다.

미드타운 내 미드타워 쇼핑몰은 젊고 활기찬 롯폰기힐스에 비해 점잖고 우아한 분위기다. 쇼핑몰 한복판에 미술관이 들어서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2층 산토리미술관에서는 다양한 예술작품을 무료로 감상하면서 예술작품과 기념품을 살수 있도록 했다. 예술감상을 통해 문화적 욕구를 채워주면서 동시에 상업성를 노린 것이다.

최첨단 빌딩 안에 흡연실이 따로 설치돼 있는 점도 특이하다. 흡연실은 마치 하나의 갤리리를 연상시킬 정도다. 갓을 씌운 등이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벽면에 설치된 대형 LCD모니터에는 형이상학적 그림들이 표출돼 흡연자들의 여유로움을 느낄수 있게 했다.

미드타운은 특별한 디자인과 예술적 감각의 구조물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도록 해 토쿄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드타워 내 흡연실. 마치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공간이다.↑미드타워 내 흡연실. 마치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공간이다.
이처럼 일본 부동산개발업체들은 도심재개발 사업에서 차별화를 강조한다. 아크힐스의 경우 산토리힐이라는 일본 최고의 콘서트홀을 지어 문화공간이란 인식을 높였고 콘서트홀 위에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테마별 정원을 꾸몄다.

시부야의 오모테산도힐스도 일본 대표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를 내세워 브랜드화에 성공했다. 4층에서 1층까지 계단을 통하지 않고도 쇼핑몰을 돌며 내려올 수 있는 독특한 디자인이 오모테산도힐스의 특징이다.

게다가 외벽에 LED를 삽입, 건물 전체를 광고판으로 만들었다. 밤이면 건물 전체를 감싸는 화려한 그래픽과 광고가 시부야 거리를 더욱 화려하게 만든다.

이밖에 오다이바는 후지TV 견학, 온천, 모노레일, 레인보 브릿지 야경 등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하루미도 로스앤젤레스의 화원, 포르투갈의 분수, 베벌리 힐스의 계단, 이탈리아 천정화 등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오모테산도힐스가 들어선 시부야거리 전경↑오모테산도힐스가 들어선 시부야거리 전경
'힐스'를 통해 본 우리의 과제는

일본 도쿄 도심의 주요 복합단지들은 단순히 상품을 팔기보다는 유·무형의 문화를 팔고 있는 마케팅이 돋보인다.

국내 수도권 곳곳에서도 스포츠센터, 비즈니스센터 등 편의시설과 마트 음식점 등 각종 상가 시설을 갖추고 있는 복합단지가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 비해 고밀도로 개발돼 녹지가 부족하고 쾌적성이 떨어진데다 단지 안팎에서 볼거리가 약하다.

우리의 주상복합단지는 소비자들이 문화적으로 즐기고 쉴 수 있는 공간보다는 최대한 매장수를 늘려 임대수익을 올리거나 상품매출을 극대화시키는 구조로 조성돼 왔던 게 사실이다.

해외 유명건축물 대부분을 둘러봤다는 희림종합건축 정영균 대표는 "한번 개발에 수조원이 드는데도 일본 복합단지들이 호황을 누리는 이유는 사람을 끌어 모으는 문화적 가치에 많은 것을 투자했기 때문"이라며 "수십조원이 투자되는 용산국제업무지구가 일본의 롯폰기힐스나 미드타워의 그 이상을 넘어섰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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