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이제는 파실 마음이 있으십니까?

머니투데이 김성호 기자 2008.02.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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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면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데 굳이 지금 팔 이유가 있나."

지난 2005년 말 세종증권 매각 당시 한 중형 증권사 오너에게 매각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말이다.

이 오너의 전망이 요즘 그대로 적중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대한 기대감, 그리고 금감원 신규증권사 설립 허용이 최근 증권업계 인수합병(M&A) 시장에 불을 붙였고, 증권사 몸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이 신흥증권 인수금액으로 현 주가의 2배 이상을 지불한 것이 좋은 예다. 현대차그룹은 지승룡 사장과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주식 345만5089주를 주당 6만481원에 인수키로 했다. 이번 딜로 신흥증권의 오너인 지승룡 사장과 특수관계인들은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게 됐다.

과거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지 못해 헐값에 증권사를 매각했던 대주주들 입장에선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그동안 증권업계의 M&A가 활발하지 못했던 것은 증권사 대주주들이 증권사를 매각에 따른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증권사를 자회사로 둔 그룹 또는 금융회사의 경우 비록 증권사를 주요 자회사로 육성할 생각이 없지만 굳이 헐값에 내다 팔 이유도 못 느꼈기 때문이다. 실질적 주인인 오너들 역시 기왕이면 받을 수 있을만큼 받고 팔겠다는 생각 탓에 시장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증권업계의 M&A는 더디기만 했다.

그러나 KGI증권, 한누리투자증권, 신흥증권 등이 꽤나 괜찮은 가격에 잇따라 매각되면서 평소 매각에 뜻이 있어던 증권사 대주주들의 생각도 점차 바뀌는 모양세다. 최근 증권업종 관련 애널리스트들이 M&A 기대감을 이유로 증권주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현재 국내에는 50여개가 넘는 국내외 증권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수년째 계속되는 강세장으로 먹고살기는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계속되는 시장변화에 이들 중 몇 개의 증권사가 영업을 계속해 나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시장이 업계의 구조조정을 원하고, 이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면 뜻한 바 없이 적당한 가격에 회사를 정리하겠다는 뜻을 가진 증권사 대주주들은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돈 때문에 증권사를 정리하지 못했던 대주주분들 "이제는 파실마음이 생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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