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의 숨은 엔진, 심사평가

김창엽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 2008.02.05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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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엽의 건강보험이야기②]심평원의 심사평가 기능

건강보험에 해당하는 진료는 얼마나 될까. 지난해 전체 건강보험 영역에서 이루어진 진료는 무려 9억6000만건이 넘는다.

평일 기준으로 하루 360만 건이 넘는 어마아마한 양이다. 물론 이러한 진료에는 수많은 사람과 물자, 시간이 들어간다.

이 많은 진료는 건보재정이 쓰이는 원천일 뿐더러 온 국민의 건강과 직결된다. 따라서 건강보험의 진료가 본래 취지에 맞게 잘 관리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진료의 비용과 질이 항상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이 우선순위가 가장 높다. 비용이 너무 비싸지는 않는지, 만에 하나 엉터리 진료로 국민이 피해를 보지는 않는지 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건강보험에서 이러한 기능을 통틀어 ‘심사평가’라고 한다. 이 기능이 작동하는 것을 국민들이 직접 느낄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 기능 자체는 건보를 자동차라 하면 그 안에 숨겨진 엔진이나 매한가지다.

우아한 백조의 물 속에 숨겨진 발, 또는 야간의 불침번이라 해도 좋다. 이 것 없이 현재의 건보가 운영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 심사평가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상세하다. 진료에는 의사의 진료, 처치, 검사, 약 등이 따라 다니는데, 모든 것이 심사평가의 대상이다. 예를 들어 감기로 사흘간 검사를 하고 주사를 맞았다면, 어떤 병으로 무슨 검사와 주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또 가격은 얼마인지를 일일이 신청하고 그것이 적정했는지 자세한 심사평가를 받는다.

이러면 심사평가의 양이 얼마나 많을지는 금방 짐작할 수 있다. 진료건수가 10억 건이라면, 상세한 항목은 수십억, 수백억 항목이 넘는다. 결코 가볍거나 작은 업무가 아닌 셈이다. 이러한 심사평가를 담당하는 곳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라는 공공기관이다.

이렇다 보니 심사평가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감기로 주사를 맞았다면, 어떤 주사는 괜찮고 어떤 주사는 안 되는지, 또 괜찮은 주사라고 해도 하루에 한번만 되는지 하루에 두 번도 적정한 것이지 기준이 필요하다. 심사평가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기준은 당연히 의학적, 과학적인 타당성을 기초로 만들어진다.


의학적으로 어떤 병에 비타민 주사를 맞는 것이 불필요한 것이라면(기준), 비록 환자가 주사를 실제 맞았더라도 이것은 기준을 위반한 것이 된다. 위반으로 끝나지 않고 이 주사는 ‘적정하지 않다’고 해서 보험 진료비를 지급하지 않는다. 병원 입장에서는 실제 어떤 행위를 하고도 진료비를 받지 못하는 것이므로 손해를 보는 셈이다. 그 다음부터 이런 기준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느 분야든 그렇지만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을 정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더구나 의료는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적지 않아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환자마다 상태가 다른데, 일률적으로 기준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의료 전문가들의 주장도 강하다. 그러나 아무런 기준 없이 모든 진료를 의사 개인이나 의료기관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것이 전세계적인 합의이다.

다만 기준을 더욱 합리적으로 개선해 가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잊지 말 것은, 어느 경우든 국민의 건강보호와 건보 재정의 효율적 지출, 의학발전이 균형 잡힌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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