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환손실 기업에 위험한 환헤지 유혹

더벨 이승우 기자 2008.02.0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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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액 높여 레버리지 상향 제안… 환율 급변시 손해 더 커져 "무리한 마케팅"

이 기사는 02월05일(09:55)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외환(FX)옵션의 손실이 최근 들어 급증하자 은행들이 레버리지를 높이는 방식으로 손실을 만회하자고 권유하고 있어 문제를 키우고 있다.



향후 환율이 큰 변동이 없다면 다행이지만, 아래로 크게 떨어지거나 위로 급등할 경우 현재까지의 손실이 배가되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5일 섬유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경북 소재 한 중소기업은 최근 FX옵션(KIKO구조) 관련 손실이 크게 늘어났다.



넉아웃(Knock-out) 배리어 890원과 넉인(Knock-in) 배리어 935원, 행사가격 910원으로 작년 11월 50만달러어치 옵션 계약을 했는데 최근 최근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배리어 상단을 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리어 상단을 터치하면 계약금액 50만달러의 두 배인 100만달러를 매달 910원에 팔아야 한다. 925원과 910원의 차이에다 100만달러를 곱한 2500만원의 손실을 매달 보고 있는 것이다. 이미 두 달동안 배리어 터치로 인해 5000만원 손실을 봤다.

문제는 남은 계약기간인 4달 동안에도 손실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935원 아래에서만 머무를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이미 환율은 950원대 위로 오른 경험이 있는 상태다.


이같은 외환시장 상황과 기업의 손실 사정을 알고 있는 거래은행은 계약금액을 70만달러로 높여 레버리지를 높이자는 제안을 해왔다. 계약금액을 높이면 행사가격과 배리어를 높여 남은 기간의 손실 가능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은행은 행사가격 950원과 상하단 배리어를 각각 990원, 920원으로 제시했다. 레인지 상단이 990원으로 상향조정되면 배리어 터치로 인한 넉인 우려는 줄어든다.

그러나 환율이 990원 이상으로 더 오를 경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환율이 급등해 넉인이 되면 70만달러의 두배인 140만달러를 팔아야 한다. 기존 넉인시 매달 2500만원의 손실이 5600만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 기업은 고민에 빠졌다. 현재의 손실 정도를 감내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할 것이냐 아니면 추가 레버리지를 높여 현재 손실을 상쇄하느냐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업의 사례는 그나마 괜찮은 경우다. 옵션 담당자가 해당 상품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심각하다.

복수의 외환시장 관계자들과 업계 외환 담당자들에 따르면, 이 옵션상품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은행 지점의 직원과 기업 담당자간 거래가 상당한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몇 년동안 환율이 내리면서 옵션으로 큰 이익을 봤다는 소문이 퍼지자 파는 쪽과 사는 쪽 서로가 적극적으로 옵션 상품 매매에 열을 올린 결과다.

이렇게 되자 옵션 이해도가 낮은 상황에서 작년 옵션 상품에 막차를 탄 기업 외환담당자는 시쳇말로 '죽을 맛'이다. 은행 지점을 찾아 가봐야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은행 옵션 담당자를 찾아갔더니 이같은 레버리지를 높이는 방식을 권유한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3배 혹은 6배까지 레버리지를 높이는 방식을 권하기도 한다.

외환시장 한 관계자는 "외환 옵션 관련 손실이 계속 나니까 기업 담당자들도 감당하기 힘든 지경이 됐다"며 "이를 이용해 은행들이 레버리지를 높이는 방식으로 옵션 상품을 리스트럭처(Restructure) 하기를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옵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기업이라면 선택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의 경우, 책임을 질 수 없는 은행들의 말만 믿고 따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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