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탕과 와인 '낯선 문화의 즐거움'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 2008.02.13 12:31
글자크기

[머니위크]전두환의 '나의 와인스토리'

추운 겨울 가장 행복한 순간의 하나는 따뜻한 이불속에서 마냥 게으름을 부리거나 뜨끈한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반도에도 남쪽 끝에서부터 백두산까지 도처에 좋은 온천이 많지만 유럽 특히 독일에는 수많은 온천이 있고 독일인들은 온천을 유달리 즐길 뿐 아니라 만성질환이나 성인병치료에 온욕 건강법을 잘 활용하고 있다. 일정기간 온천에 머물면서 의사나 심리사의 지도아래 정해진 일정에 따라 탕 속에서 조용히 체조를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질병 치료인 만큼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지명중 따뜻할 온(溫)자가 포함되면 온양과 같이 온천이 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서울의 온수동에서 온천을 찾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독일의 지명중에도 목욕, 온천을 뜻하는 바트(Bad)나 바덴(Baden)이 들어가면 바트 홈부르크나 비스바덴과 같이 온천이 있다. 아무래도 독일 내 수백개의 온천중 맨 꼭대기에 있는 최고의 온천휴양지는 한때 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온 국민이 초미의 관심을 기울였던 바덴바덴이라 생각한다.

바덴바덴은 독일의 남서쪽에 스위스와 인접한 슈바르츠 발트지방에 있다. 이 지역의 지명은 숲이 너무 우거져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 하여 '검은 숲'이란 뜻이다. 로마황제 카라칼라가 지은 목욕탕 유적이 아직 남아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카라칼라 온천'은 요양과 레저를 위한 현대적인 대형건물이다. 1층에는 큰 수영장과 욕탕들이 있고 2층에는 사우나시설이 있다. 꼭 한번 들릴만한 곳이다. 다만 이곳뿐만 아니라 유럽 북쪽에 많은 사우나는 대부분 남녀 혼탕이라는 것은 알고 가야 한다.



빠뜨리기 정말 아까운 곳은 19세기에 건설된 로마식 목욕탕 프리드리히 목욕탕이다. 르네상스식 아름다운 궁전과 같은 이곳은 사우나와 탕을 번갈아가며 사우나의 진수를 맛보게 하는 18가지의 코스가 있으며 출발은 남녀 구분이 되어 있으나 아홉 번째(필자가 일명 선녀탕이라 이름 지은 곳)에서 서로 만나게 설계되어 있다.

룩셈부르크의 목욕탕에서 처음 혼탕을 경험할 즈음 사우나에서 필자가 떨어트린 비누를 친절하게 주워준 여인은 바로 알몸인 우리 회사 현지 여직원이었다. 이후 우리 동내 이웃 한 가족 엄마, 아빠, 딸, 아들을 조그만 사우나 방에서 함께 만나 반가이 인사를 나누게 됐지만 초기에는 숨 막히는 큰 문화적인 충격을 느꼈다. 필자는 남에게 속살을 보일 만약의 경우 죽음을 무릅쓰고자 품속에 은장도를 지녔던 조선 여인의 후예가 아닌가?

그러나 문화의 차이로 인한 충격은 그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서로 동화되게 된다. 필자도 1년이 채 되지 않아 미국, 영국 등 혼탕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온 서양남자들의 어색한 시선이 오히려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요즘 여러 종류의 만남의 자리에서 와인은 자주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술을 너무나 사랑하는 어떤 분들은 무슨 소리냐 “술은 역시 소주 밖에 없어”하며 못마땅해 하는 경우가 있어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한다. 글로벌시대를 맞아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지만 우리문화를 지키고 특화할 수 있는 로컬화 또한 중요함을 부인할 수는 물론 없다.

바덴바덴의 눈 내리는 겨울에 노천 온천을 즐기고 어느 봄날 그 노천탕가에서 우리 시골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만한 목련에 함박눈 같이 만발한 꽃을 바라보며 모젤와인의 리슬링과 같은 우아한 꽃향기는 적지만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부드러운 뮐러 트르가우를 즐겨보자.



어느 순간 사우나에서 만난 아름다운 아가씨를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요즘같이 추운 날씨에 와인으로는 좋은 매칭의 대안을 찾을 수 없는 과메기에 소주를 그들과 함께 하며 목련 꽃 다시 필 봄날을 기다리자.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