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이야기]전봇대는 뽑았지만...

머니투데이 방형국 부장 2008.01.2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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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인의 말한마디에 전봇대가 뽑혔다.

"트레일러가 다닐 수 있도록 전봇대를 옮겨달라고 해도 몇 년이 지나도 안 옮긴다. 공장을 유치하면 뭐 하느냐. 사소한 것도 안되는데"라는 그의 한마디에 5년이 지나도록 탁상행정에 가로막혀 기업인을 괴롭히던 대불공단의 전봇대가 시원하게 뽑힌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적잖은 문제가 있다. 전봇대를 뽑는 방식에 말이다. 전봇대를 뽑던 날 비가 왔다. 비오는 날에는 감전의 우려가 높아 고압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함부로 거둬치우고, 전봇대를 이설하는 작업을 해선 안된다. 안전사고에 대비했다고는 하지만 비오는 날에 이런 날 작업을 해서는 안된다.



뽑혀 널부러져 있는 전봇대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참여정부의 무능을 일소했다는 통쾌한 대리만족을 느낄 지는 모르겠지만 당선인의 말 한마디에 비로소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개운치 않은 뒷맛을 넘어 섬뜩함마저 준다.

그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좌우되는 독단을 낳는 것은 아닌지, 손은 놓은 채 그의 입만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섬뜩함이다. 5년씩이나 전봇대를 뽑지 못한 무능한 행정력도 심각하지만, 말한마디에 번갯불에 감전된듯 떠는 모습도 선진국을 지향하는 우리의 자세는 아니다.



한반도 대운하도 같은 시각에서 봐야할 과제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기능을 차치하면 국토에 점하나를 찍는 개발사업에 지나지 않지만, 대운하는 국토에 커다란 선을 긋는 대역사다.

경제성장과 물류 관광에 어느정도 일익을 담당할지 모르지만 당선인의 대선 공약이라해서 전봇대 뽑듯 해치우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대운하 프로젝트는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라 그 효과와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첫번째다.

인수위는 국민주택기금에서 융자를 받을 경우 분양가의 4분의 1이면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지분형 아파트 분양제를 도입키로 했다. 투자기간이 길고, 임대수입이 없으며, 거주자와의 역할.권리 관계가 불명확한 지분형 아파트에 민간투자가들이 나설지 의문이다.


인수위가 국민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는 점에 공감하지만 자칫 제2의 반값아파트가 되지 않기 위해, 또 속았다는 좌절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시간을 갖고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이 당선인의 첫 주택정책이라해서 여기에 집착하기 보다, 양질의 택지확보,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등 다양한 기본 주택정책으로 유연하게 시장의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당선인이 대운하 등을 '반드시' 관철시킬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그는 국민이 반대한다면, 물러설 줄 아는 지혜를 갖췄기 때문이다. 대선 공약을 철회하거나 수정할 명분이 충분히 쌓이면, 쿨하게 물러서거나 보완하는 것 또한 당당한 처신이다.

이 당선인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되자 유세 당시 두르고 다니던 파란색 목도리를 회색의 명품 목도리로 바꾸었다.

기자는 이 당선인의 목도리 교체는 '후보 이명박'과 '대통령 이명박'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국민에게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이해한다. 대통령 선거를 이기기 위한 후보와 당선인, 더 나아가 대통령은 당연히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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