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면 더 생각나는 '글뤼바인'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 2008.01.27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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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전두환의 '나의 와인스토리'

영하 10도 이상 기온이 며칠 지속되니 겨울 맛이 난다. 방문 고리를 잡으면 손이 쩍쩍 얼어붙던 어린 시절, 우리는 추운 줄 모르고 하루 종일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고 놀았다.
추운 겨울이면 더 생각나는 '글뤼바인'


저녁 무렵이면 배가 고파, 파김치가 된 몸을 겨우 끌고 집에 가면 온통 젖은 옷 때문에 어머니의 꾸지람을 듣곤 했다. 칼바람 같던 어머님의 꾸지람이 정말 그립다. 추위에 맞서 이기면 정신이 상쾌해지고 몸도 가뿐한 느낌이 든다. 시인 이상은 “육신이 흐느적하도록 피곤할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라고 그의 소설 <날개>에서 말했다.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트리어는 사람이 모여 거주한 시기로 보면 영원의 도시 로마보다 1300년이나 앞선 도시이다. 초대 로마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가 도시를 제대로 만들었고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한때 이곳에서 제국을 통치했다.
룩셈부르크로 가는 방향으로 모젤 강과 만나고 그 곳이 양국의 국경이다. 모젤 강은 북위 약 50도선에 위치하고 있어 우리의 삼팔선을 염두에 두면 상당히 북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와인생산은 북반구에서는 북위 30~50도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모젤강변은 와인생산의 북방한계선이라 조금이라도 햇빛을 더 받게 하기 위해 45도가 넘어 보이는 경사에 포도나무를 심는 등 일찍이 남쪽에서 온 로마 군인들의 고향의 맛, 와인을 마시기 위한 염원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이곳의 화이트와인 리슬링은 세계 최고 수준의 와인이다.

룩셈부르크에 있던 우리는 주말이면 쇼핑을 위해 트리어로 갔다. 가끔 옷을 사야 할 경우는 덩치 큰 게르만족에 맞춘 옷은 작은 사이즈가 적어 상대적으로 몸집이 작은 라틴족의 도시인 프랑스의 어느 도시로 가야 했다.



두 도시가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지만 독일의 중년 내국인이 가장 선호한다는 고도 트리어를 자주 가게 된다. 인구 10만 정도인 트리어는 도시 규모에 비해 도심상가가 잘 발달되어 있어 주말에는 인근도시의 쇼핑객이나 관광객들로 붐빈다. 추운겨울 쇼핑을 마치고 흐뭇한 마음으로 아름답기도 한 상가 거리를 걸어 나오면 반가운 겨울 먹을거리가 보인다.

따뜻한 와인- 글뤼바인은 추운 겨울 수레나 자전거에 실어 길거리에서 판다. 모락모락 따뜻한 김에 끌려 수레를 빙 둘러선 사람들을 뚫고 머그잔이나 종이컵에 주는 따끈따끈한 글뤼바인을 들고 마시면 레몬, 오렌지, 계피 향에 북위 50도의 음산하고 뼈 속까지 스미는 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감기예방에도 좋다는 글뤼바인은 직접 만들어 보자. 준비물은 오렌지 1개, 레몬 1개 정향 3~6개, 계피스틱 1개, 비교적 값싼 레드와인 1병이면 된다.


냄비에 오렌지와 레몬을 썰어서 넣고 정향, 계피를 넣고 물 2컵 정도 부운 다음 15분정도 끊인다. 체에 걸러 충분히 우려난 물에 와인을 붓고 5분정도 더 끊이면 된다. 너무 끊이면 알코올이 다 날아가니 주의해야 한다. 약간의 단맛을 위해 흑설탕이나 꿀을 적당량 넣어 조정하면 좋다.

프랑스에서는 뱅쇼 (vin chaud)라고 하며 북쪽의 유럽 사람들은 감기가 들면 이 따뜻한 와인 한잔으로 몸을 데워 감기약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서울보다 더 추운 우리 집 양지에서 뱅쇼 한잔을 들고 창밖의 아직 녹지 않은 마당의 눈을 보며 눈만 오면 마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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