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 매각과 김석준의 그림자③

더벨 박준식 기자 2008.01.16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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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 공적자금회수 명분이 매각 발목잡아

이 기사는 01월16일(07:58)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채권단이 내렸던 결정은 매각을 앞둔 쌍용건설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공적자금 회수극대화를 위해 옛 오너인 김석준 회장을 오너로 임명해 경영권을 맡겼던 결정이 채권단 입장에서는 매각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워크아웃 기간만 5년 7개월, 그동안 쌍용건설 (0원 %)에는 김석준 회장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200여명의 친위대가 생겨났다. 김 회장이 자신과 채권단의 뜻에 따라 백의종군을 시작한 후 만들어진 무형의 조직이다.



쌍용건설 매각과 김석준의 그림자③


워크아웃이 결정된 99년, 김 회장은 채권단의 요청에 따라 계속해서 경영을 맡기로 했지만 20%에 가깝던 그의 회사 지분은 3차례에 걸친 감자로 완전히 희석됐다. 동시에 2400명이던 임직원은 700여명으로 줄었고, 알짜자산은 채권단의 자금회수를 위해 대부분 팔려나갔다. 채권단은 워크아웃이라는 명분으로 경영조직의 틀은 남겨두었지만 사실상 회사는 청산에 준하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맞아야 했다.

같은 시기, 김 회장은 쌍용자동차 부실과 관련한 검찰의 조사도 받았다. 부실규모가 막대해 단기간 내에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됐던 조사는 2001년까지 2년 동안이나 계속됐다. 백의종군을 결정한 김 회장은 최고경영자에 대한 조사가 회사의 수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대표이사직에서도 물러났다. 회장이라는 직함만 남기고 영업과 수주활동에만 주력했다.

옛 오너가 자신의 지분을 하나도 남기지 않은 회사에서 오직 회생만을 위해 수년간 발로 뛰는 모습을 보이자 직원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구조조정 이후 김 회장에 적개심을 보였던 일부 직원들까지도 회사를 살리자는 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검찰의 발표는 김 회장에 대한 의심을 버리지 않던 직원들에게 그의 의지를 역설하는 증거가 됐다. 당시 검찰은 2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김 회장에 대출과 횡령의 책임을 물었지만 수사록에는 "개인비리가 없다"고 명시했다. 재벌 2세이지만 회사 내부에 친인척을 한명도 두지 않은 상태에서 명예회복만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김 회장에게 감동한 직원들은 하나, 둘, 친위대가 됐다.

쌍용건설 매각과 김석준의 그림자③
임직원들이 현재와 같이 결사대 수준으로 뭉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3년 이뤄진 32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서다.

당시 쌍용건설은 어렵게 영업을 지속했지만 워크아웃 기업이라는 구조적인 한계로 인해 영업활동에 제한을 받았다. 업친데 덥친격으로 채권단의 마지막 감자가 강행됐고, 자본잠식상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2년연속 자본잠식 기업은 거래소에서 퇴출된다는 요건이 신설됐다. 회사측은 일말의 기대를 걸고 채권단에 잠식을 해결할 증자를 요청했지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회사를 지키기 위해 우리사주조합이 출범했고 직원들은 퇴직금을 미리 정산, 2500원 수준이던 주식을 2배인 5000원에 사들였다. 당시 이 결정을 옆에서 지켜본 김 회장은 "직원들이 나서는 데 회장이 좌시할 수 없다"며 자택을 담보로 20억원을 대출받아 유상증자에 함께 참여했다. 김 회장이 가진 현재 가진 1.41%의 지분이 바로 그 때 증자로 얻은 주식이다.

당시 채권단은 직원들이 희생을 결단하자 증자에 참여치 않는 대신 한가지 옵션을 내놓았다. 이 옵션이 바로 쌍용건설 매각의 최대 걸림돌, 우선매수청구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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