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vs계획', '친기업vs기업친화' 다른 말?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01.1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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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 여론 의식한 말장난식 해명

'기획'과 '계획', '친(親) 기업'과 '기업친화'는 다른 말일까? 실질적으로 같은 말인데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두 단어의 차이를 알리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이경숙 인수위 위원장은 11일 “우리가 하는 일을 두고 '친기업'이라고들 하는데, '기업친화적'이라고 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앞서 이동관 대변인이 10일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는 ‘프로비즈니스'(pro business)란 의미가 아니다"고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달 28일 대기업 총수들과의 만남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정부를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한 것이 '친재계'라는 뉘앙스가 담긴 '프로비즈니스'로 해석되는 것을 우려한 해명이다.



그러나 이 위원장이 "'친기업' 대신 '기업친화'가 옳다"고 한 것과 같은 날 이 당선인은 "나더러 너무 '친기업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난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전국상의회장단 신년인사회)고 밝혀 이 위원장의 해명을 무색케 했다.

이 대변인의 영어를 동원한 '단어 해명'은 처음이 아니다.

사공일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의 "정부의 기획조정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발언으로 '과거 관주도의 경제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던 지난 1일이었다. 이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기획'과 '계획'이라는 용어의 혼돈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옛 경제기획원이 하던 계획은 '플래닝'(planning)이고, 사공 위원장이 말한 기획조정은 '코디네이팅'(coordinating)이다"고 했다.


이에 대해 모 대학 경제학 교수는 "어디서든 경제정책은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라며 "'플래닝'이든 '코디네이팅'이든, 정부가 효율적 자원배분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같다"고 말했다.

사례는 또 있다. 당초 이 당선인 측은 2009년 예산을 10% 절감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자연스레 8일 기획예산처의 인수위 업무보고를 놓고 관심은 '예산 10% 절감 방안'에 모아졌다. 그러나 기획처의 보고 직후 인수위는 "이 당선인의 예산 10% 절감 방침에 따라 대폭적인 예산 절감을 추진키로 했다"고 발표했다.

'예산 10% 절감 방침'이란 표현을 포함시켰지만, '10% 절감'을 추진하겠다고 못 박지는 않았다. 대신 '대폭적인 예산 절감'이란 표현이 자리를 채웠다.

한반도 대운하를 비롯한 주요 공약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오히려 14조원 가량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등의 판단이 반영됐다. "예산 10% 절감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상당한 고통이 따른다"는 기획처의 의견도 고려됐다.

이를 놓고 "인수위가 예산 10% 절감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인수위 측은 "포기는 너무 심한 표현"이라며 뉘앙스 조절을 요청했지만,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한 경제학 교수는 "정부정책이 추구해야 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신뢰(confidence)"라며 "중요한 것은 정책의 일관성일 뿐 단어의 뉘앙스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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