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김영삼 전 대통령 팔순연 인사말

송기용 기자 2008.01.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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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 이 자리를 만들어 주신 김수한, 박관용 의장과 김덕룡 의원, 실무 일을 맡아 준 홍인길, 김무성 의원 그리고 이 사람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이 자리에 나와 준 존경하는 동료, 동지 여러분. 감사하다. 반갑다.

제 나이가 어느덧 팔십이라는 것이 저 자신, 믿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하다 저도 모르는 사이 여든 살이 됐다. 인생은 과연 삼국지에서 누가 말한 것처럼 백마가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는 그 순간처럼 빨리 지나갔다. 그러나 지난 80년 역정을 돌아보면 저로서는 감회가 적지 않다. 제가 살아온 80년은 질풍노도의 시대였다. 우리 조국은 그야말로 격동의 80년이었다.



오늘의 저를 키운 것은 내 조국의 하늘과 땅이었다. 식민통치와 분단, 그리고 독재라는 조국의 척박한 현실이 저를 부르고 저를 키우고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 저에게 내 나라를 반드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일제의 식민통치였다.

저로 하여금 정치의 길, 민주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은 이승만 독재였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제 어머니의 희생은 저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오랜 군부독재의 탄압은 문민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에 저의 열정을 불태우게 했다. 몇번씩이나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제 스스로 생명을 건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마침내 우리는 1993년 2월25일 이 땅에 문민민주주의 정부를 세웠다. 그것은 한국정치사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저는 32년에 걸친 기나긴 군사독재 정권을 제 손으로 저의 책임 하에 청산했다. 공직자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를 단행했다. 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내 조국이 안고 있는 장애와 위험을 제거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나이가 없고 희망을 품고사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저는 내 조국, 내 국민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저에게는 아직도 꿈과 희망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무대에 우뚝 서서 위대한 한민족 시대를 창조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 꿈이 이뤄진 어느날 조용히 그러나 기쁘게 눈 감을 수 있기를 저는 바란다. 이제 불안했던 10년은 가고 잃었던 길을 다시 찾아 나서는 도정이 시작됐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하늘이 이 나라를 돕고 있다. 압도적인 지지로 이 당선자를 세워서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해 주신 위대한 국민에게 감사드린다. 감히 여러분 앞에서 고백하거니와 저는 한 인간으로서 결코 비겁하게 살지 않았다. 저는 한번도 저의 사사로운 이익을 챙기지 않았다. 저는 온몸으로 앞장서서 싸워서 이 나라 문민 민주주의를 쟁취해 냈다. 저 자신, 현실을 헤치고 길을 개척했다. 대도무문의 자세로 민주주의의 새벽을 열어 나왔다.


저는 이 나라, 이 국민이 있어서 행복했다. 이 나라 이국민이 위대했고 저는 이 나라 국민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제가 조국을 위해서 공헌한 일이 있다면 그 모든 영광은 사랑하는 내 조국과 위대한 우리 국민에게 돌려 드리고 싶다.

'조국과 국민이여 자유민주주의와 더불어 세계 속에서 번성하고 영원하라' 이것이 제가 조국에 바치는 헌사요 저의 마지막 소망이다. 그러나 조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되거나 위험을 맞이한다면 저는 비록 늙은 몸이지만 떨쳐 일어나 싸울 것이다.

이렇게 달려오는 동안 미처 헤아리지 못한 일 또한 적지 않을 거이다. 신세진 것을 다 갚지 못했고 본의 아니게 소홀히 대했거나 상처를 준 일도 있을 것이다. 이제 그 모든 서운하고 섭섭한 것들을 풀고 갔으면 한다. 저의 불찰과 부덕을 이 자리를 빌어 용서를 구한다.

저는 제가 잘나서 저 혼자 이날 이때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의 오늘이 있게 한 것은 저와 함께 길을 걸어 나왔던 동지 여러분과 저와 함께 국정에 참여했던 동료 여러분들이었다.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은 저 깊은 독재의 암흑 속에서도 저를 지키고 키워주신 이 나라 국민이었다. 그리고 제 아버지와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이 있어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것을 오늘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오늘 이 자리를 빌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사랑과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국민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하다. 동지 여러분. 감사했다. 동료 여러분 감사하다. 저의 가족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새해에 건강하시고 나라에는 평화가 가정에는 만복이 깃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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