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 매각과 김석준의 그림자①

더벨 박준식 기자 2008.01.11 14:02
글자크기

[딜스토리]직원 희생 이끌어 회사 살린 옛 오너

이 기사는 01월11일(09:11)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1953년생. 올해로 만 55세.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재벌 2세다운 귀족적 풍모로 일부에서 관계지향적이라는 분석. 친형인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은 한화 김승연 회장 등과 함께 70~80년대 재계에서 일곱명의 황태자로 불림.



반면 중론은 창업주보다 공격적인 기업가 정신을 가진 2세였다는 평가. 실제로 젊은 시절 해병대 복무를 자청, 3년간 고된 훈련을 마다치 않았고, 김성곤 창업주와 형을 도와 쌍용그룹을 한때 재계 4위까지 올려놓았던 패기넘치던 현장주의 최고경영자(CEO).

김석준 쌍용건설 (0원 %) 회장의 프로필을 들여다보면 과거 인간적인 면모를 갖췄던 카리스마형 기업가들의 향취가 느껴진다. 고도성장기, 임직원들과 함께 먼지밥을 먹으며 중동의 사막에서, 동남아의 땡볕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강렬한 인상의 오너를 떠올리게 된다.



쌍용건설 매각과 김석준의 그림자①


진취적인 오너가 제시하는 지향점은 임직원들에게도 동일한 목표가 된다. CEO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기업 구성원들이 발현하는 힘은 불가능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다. 한국에서 아직까지 주주경영보다 오너경영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는 근거다.

하지만 그늘도 있다. 바텀업(Bottom-up)이 아닌 일방주의적 오너십은 경영위험을 증폭시킨다. 90년대까지 성장일로를 구가하던 쌍용그룹은 외환위기 당시에도 현금이 1조원에 육박했지만 쌍용자동차에 올인하기로 고집한 경영진의 결정으로 인해 기업집단 전체가 뿔뿔이 흩어지는 결과를 맞았다.

77년 창립돼 기네스북에 오른 싱가포르 래플즈시티를 설립, 시공실적 1위를 달리던 쌍용건설도 희생양 중의 하나다. 외환위기 당시 3700억원의 건설공사 미수금과 1600억원의 쌍용자동차 채무를 떠안아 99년 3월, 워크아웃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후 회사는 치열한 구조조정을 5년반 동안이나 거치고 나서야 가까스로 정상화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경쟁사들이 포기한 프로젝트 중 마진율이 엿보이는 극히 일부의 사업을 골라내 수익성을 한땀한땀 회복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직원 중 절반 이상이 떠나고 남은 이들은 임금을 스스로 동결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다른 기업들이 그랬듯 직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 수익성을 되찾은 스토리가 감동적이다. 기업회생 과정에서 임직원들이 맡았던 역할이 무시할 수 없는 가치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 회생과정을 잘 살펴보면 다른 곳과 구별되는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직원들의 희생을 이끈 중심에 옛 오너가 있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이 김석준 회장이다.

쉶궗 차트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