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1월11일(09:11)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1953년생. 올해로 만 55세.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재벌 2세다운 귀족적 풍모로 일부에서 관계지향적이라는 분석. 친형인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은 한화 김승연 회장 등과 함께 70~80년대 재계에서 일곱명의 황태자로 불림.
김석준 쌍용건설 (0원 %) 회장의 프로필을 들여다보면 과거 인간적인 면모를 갖췄던 카리스마형 기업가들의 향취가 느껴진다. 고도성장기, 임직원들과 함께 먼지밥을 먹으며 중동의 사막에서, 동남아의 땡볕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강렬한 인상의 오너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그늘도 있다. 바텀업(Bottom-up)이 아닌 일방주의적 오너십은 경영위험을 증폭시킨다. 90년대까지 성장일로를 구가하던 쌍용그룹은 외환위기 당시에도 현금이 1조원에 육박했지만 쌍용자동차에 올인하기로 고집한 경영진의 결정으로 인해 기업집단 전체가 뿔뿔이 흩어지는 결과를 맞았다.
77년 창립돼 기네스북에 오른 싱가포르 래플즈시티를 설립, 시공실적 1위를 달리던 쌍용건설도 희생양 중의 하나다. 외환위기 당시 3700억원의 건설공사 미수금과 1600억원의 쌍용자동차 채무를 떠안아 99년 3월, 워크아웃 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이후 회사는 치열한 구조조정을 5년반 동안이나 거치고 나서야 가까스로 정상화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경쟁사들이 포기한 프로젝트 중 마진율이 엿보이는 극히 일부의 사업을 골라내 수익성을 한땀한땀 회복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직원 중 절반 이상이 떠나고 남은 이들은 임금을 스스로 동결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다른 기업들이 그랬듯 직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 수익성을 되찾은 스토리가 감동적이다. 기업회생 과정에서 임직원들이 맡았던 역할이 무시할 수 없는 가치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 회생과정을 잘 살펴보면 다른 곳과 구별되는 다른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직원들의 희생을 이끈 중심에 옛 오너가 있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이 김석준 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