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래 회장 "노사 함께 창조하고 열매 나누자"

오동희 기자 2008.01.1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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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2008년 기업투자 기상도, 조석래 회장 동행 인터뷰

그는 6대의 버스 중 1호차를 탔다. 2008년 무자년 첫 업무의 시작을 재계의 상징인 여의도 전경련 회관에서가 아니라 국내 최대 원유 유출 사고가 발생한 충남 태안에서 시작하기 위해서다.

6대의 버스는 2일 아침 8시 30분 전경련 회관을 출발해 3시간을 달려 태안 군청에 도착했다.



조석래 회장 "노사 함께 창조하고 열매 나누자"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자 재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함께 태안에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그의 거침없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연신 기름 때 낀 돌을 닦으면서도 기자와 눈을 마주치며 호응을 바라는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서로 가진 것 빼앗다 보니 갈등

조 회장의 입에서 혼자 가지겠다는 말이 아니라 "노조와 같이 나누자"는 말이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7% 성장론에 대한 가능성을 물을 때였다.
조 회장의 말의 핵심은 노사관계의 안정이 있을 때 7%의 성장은 가능하다고 했다. 유난히 노조에 시달린 모양이다. 하지만 무조건 노조가 싫다는 얘기도 아니다.

임금에 맞는 성과를 창출하고 그에 맞는 분배를 하자는 얘기다.
그는 한 예를 들었다. 효성이 주주로 있는 A사의 경우 직원들의 평균 연봉이 6500만원이란다. 이 회사의 성과급 800% 중 200%는 초과이익이 날 때 지급하기로 한 항목이었다.


그런데 이 항목이 관례화돼 노조에서 200%를 상시지급하는 것으로 인식, 적자가 났는데도 100%의 성과급을 상반기에 지급했고 하반기에 힘들여 은행차입을 통해 증자 대금을 끌어들여 공장건설에 투자하라고 했더니 이 돈을 또 100% 성과급 지급에 사용했다고 한다.

조 회장은 "이런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노사의 갈등구조의 원인을 '서로 현재 갖고 있는 것을 빼앗으려다보니 갈등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 그것을 나누는 것에 대해 그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생산성을 높이고 생산성이 높아진 만큼 임금도 올려주는데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조 회장은 "생산성은 제자리인데 임금만 두배로 올려달라고 하는 것이 문제다"고 꼬집었다. 그는 열심히 돌에 뭍은 기름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소유와 경영 분리해야

기름에 쩐 돌을 닦는 그의 옆에 앉아 같이 방제작업을 하면서 얘기는 계속됐다. 70세를 넘긴 그는 쪼그리고 앉았던 다리가 아팠든지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다리를 편히 하고 방제작업과 대화를 섞었다.

그의 입에서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기자 입장에서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다. 재벌경영과 관련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한다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그의 말을 더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었다.

그가 말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노동자의 시각에서 주주나 경영자를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였다. 조 회장은 효성이 주주로 있는 A사와 일본 토요타를 비교했다. A사는 적자가 나도 성과급을 요구한데 반해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토요타는 다르다는 것이다.

토요타가 세계 최대 기업인 GE를 제치고 1조엔의 이익을 냈을 때도 임금인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일까. 조회장의 해석은 이렇다.
비록 그룹의 오너이더라도 회사가 잘되도록 하는 활동을 한다면 이를 경영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개인의 이익을 생각하는 주주로 봐서는 안되는 것이다.
주주인 오너로 볼 때와 경영자로 볼 때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는 인식의 차이를 들었다.
"회사가 나 개인 것이라고 생각하면 노동자들은 '내가 당신 개인을 위해 왜 일을 하느냐', '당신 배를 불리는 일에만 신경 쓸 것 있느냐 나도 더 달라'며 더 요구한다"는 것이다.

토요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이렇다. 토요타는 현재 사실상 주인이 없는 회사이기 때문에 경영자나 노동자나 모두 한마음으로 상대에 대한 피해의식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같이 잘 살자는 의지가 있으니 혼자 욕심을 차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같이 노력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서 나누자는 게 조 회장의 생각이다. 노동자들이 경영자를 볼 때 주주의 이익만 챙기는 소유와 회사와 직원을 함께 생각하는 경영을 분리해서 봐달라는 게 그의 당부다.

조 회장은 "기업총수가 경영자로서 경영활동을 한다고 본다면 '기존에 있는 것을 더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노사가 함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나누는 게' 중요하 다"고 말했다. 그는 결코 노조를 적대시하지 않았다. 같이 잘살아보자는 게 그의 지론이다. 다만 원칙은 지키자고 호소한다.
조석래 회장 "노사 함께 창조하고 열매 나누자"
일자리 창출은 직장 없는 사람에 초점

방제작업을 하면서 찬바람에도 그의 말은 끊이지 않았다.
현재 한국 최대의 화두인 '일자리 창출'에 대한 그의 생각을 쏟아냈다.

그는 "일자리를 가진 사람을 더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를 못가진 사람의 일자리를 만들어주자는 게 초점이다"고 했다. 새 일자리를 만드는 능력도 모자라는 데 기존에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이 더 달라고 한다. 기존을 후대하는 것과 직장이 없는 사람을 챙기는 것 중 어느 쪽이 우선 순위냐고 그는 되물었다.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무직 등을 놓고 볼 때 가장 비참한 쪽은 후자다. 조 회장이 언급한 가장 앞선 쪽의 요구가 중간에 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마지막에 언급된 사람들에게는 절망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다른 견해도 있지만 전혀 인정하지 못할 대목은 아니었다.

국민에게 사랑받는 전경련될 것

태안 바닷가에서 그의 얘기는 전부 '노사화합'과 '일자리 창출'이었다.
그 와중에 기업에 대한 사회적 반감에 대해 해법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잠시 일하던 손을 멈추고 오찬 때 했던 얘기를 이어갔다.

"정부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옳은 일을 제대로 하면 인정을 받는다"며 "오늘도 시무식에서 '국민의 신뢰를 받는 전경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금 국민이 원하는 일자리 창출을 해내는 것이 첫째"라고 말했다. "국민이 믿지 못하는 일, 싫어하는 일을 안하는 것이 그 다음 신뢰를 얻는 방법"이라고 했다.

한 시간 가량을 그렇게 앉아 태안의 기름범벅인 돌을 부직포로 닦으며 얘기를 나눈 후 기사 송고를 위해 태안의 해변을 떠났다.

무자년 새해 나이로 74세에 접어드는 조 회장은 그로부터도 2시간여를 삭풍이 부는 태안바닷가에서 방제작업에 힘을 쏟았다. 건성으로 닦는 솜씨가 아니었다. 그의 모습에서 다른 정치인들처럼 그저 사진이나 몇장 찍고 자리를 뜨겠지 하는 기자의 생각은 무참히 깨졌다.

그는 "나는 엔지니어다"며 자리를 뜨려는 기자들에게 "기사는 무슨 기사를 쓴다고...앉아서 기름이나 더 닦고 가라"고 방제작업을 독려했다.

무자년 업무의 첫날. 차가운 바람들이 날카로운 화살촉처럼 자원봉사자들을 공격해왔다. 하지만 자원봉사자들 속에 있는 조 회장의 모습에서 훈풍이 느껴졌다. 뒤돌아서는 머리 속에 올 한해 한국 경제를 한번 기대해볼만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찬 바람과 함께 스쳐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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