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오바마가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

머니투데이 박형기 국제부장 2008.01.08 10:39
글자크기
[글로벌뷰]오바마가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


'검은 돌풍’ 배럭 오바마가 아이오아에 이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도 1위를 차지할 전망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상대인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약 10%포인트 차이로 앞서고 있다. 클린턴 후보가 눈물로 지지를 호소하는 장면이 뉴욕타임스의 머릿기사를 장식할 정도다.

뉴햄프셔는 백인이 96%이며, 당원이 아닌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오픈 프라이머리’여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오바마가 8일(현지시간) 예상대로 뉴햄프셔에서 승리를 거둔다면 오바마 돌풍이 아니라 ‘오바마 대세론’을 확산시킬 계기를 마련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오바마 돌풍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미국인이 ‘변화’를 선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10년간 공화당 정권은 “세상은 미국인이 살기에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다”는 안보논리를 자극해 군산복합체를 집중 지원했고, 이라크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미국의 안보는 개선되지 않았고, 외국인의 자유로운 입국을 차단함으로써 미국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인들은 이제 공화당의 안보지상주의에 신물을 내고 있는 것 같다. 오바마의 최대 공약이 ‘16개월 내 이라크 철수’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오바마는 미국의 성역인 군산복합체를 해체하고 미국 일방주의가 아닌 다중주의를 선택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오바마의 부상은 부시의 일방주의에 지친 세계에 엄청난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오바마의 부상은 보다 거대한 의미를 담보하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다. 그동안 미국을 지배해 온 이른 바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s,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의 시대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WASP의 리더십은 9.11 테러 이후 약화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결정적인 상처를 입었다.

미국의 상징인 월가의 주요은행이 아시아 국부펀드로부터 수혈을 받아야할 지경에 이르러 월가에서는 주요 투자은행의 본사가 두바이 또는 베이징으로 이사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자조석인 푸념이 나오고 있다.

미국 인구의 12%에 불과한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은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이 대통령이 되는 것 같이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 지배층의 외연이 확대되는 과정이라는 큰 의미를 담고 있다.


세계는 지금 ‘팍스 아메리카나’에서 ‘팍스 시니카’로 전변되는 과정에 있다. 미국이 여기에서 주저앉는다면 21세기 후반 미국인은 중국에게 패권을 빼앗기고 2류국 국민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오바마가 당선된다면 미국은 최소한 팍스 시니카 시대를 늦출 사회적 역동성을 확보할 것이다. 미국 인구의 68%가 백인이다. 나머지는 히스패닉 15%, 흑인 12%, 아시아계가 5%다. 오바마의 당선을 계기로 그동안 마이너리티였던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의 부상이 시작될 것이다. 그동안 소외 받았던 계층이 사회 각 분야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미국의 역동성은 그만큼 커질 것이다.



60년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당선됨으로써 흑인 민권운동이 더욱 거세졌고, 흑인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에너지는 미국의 국력이 융성해지는 계기가 됐다. 이 때 미국은 냉전에서 소련을 이기고 최후의 승자가 되는 체력을 비축했다고 볼 수 있다.

한 때 욱일승천의 기세로 미국의 패권을 위협했던 일본이 ‘지는 해’로 전락한 것도 2차 대전 이후 한번도 지배세력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지만 자민당 일당독재 국가다. 물이 고이면 썩기 마련이다.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겪고도 일본이 부활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 사회가 역동성을 잃은 '좀비' 사회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2008년은 ‘팍스 시니카’의 원년으로 평가된다.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한 이후 30년 간 줄기차게 달려온 ‘차이나 익스프레스’라는 쾌속열차는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에 그 위용을 과시하며 중국의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릴 것이다.



지구 반대쪽인 미국에서는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는 대선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지배계층을 바꾸는 혁명에 성공한다면 팍스 시니카의 질주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패권이 이동하는 과도기에 미국 대선이 갖는 의미를 곱씹으며 이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인 것 같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