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정치변화" 朴"정치발전"··미묘한 차이

머니투데이 정영일 기자 2007.12.2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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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월만의 회동…'공천' 놓고 팽팽한 신경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9일 만났다. 박 전 대표가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있는 이 당선인의 집무실을 찾는 형식을 취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대선 후 처음이자 경선 직후인 지난 9월초 이후 4개월 만. 특히 최근 들어 내년 4월 공천 시기를 둘러싸고 양측간 미묘한 입장차가 감지되는 가운데 이뤄지는 회동이이서 논의 내용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이 당선인은 여유를 갖고 선거때 지원 유세를 해 준 박 전 대표에게 감사를 표하는 데 무게를 실었다. 박 전 대표의 얘기나 지적에도 동의를 표하며 맞장구를 쳤다. 박 전 대표는 말수는 적었지만 필요한 말을 빼놓지 않는 그만의 스타일을 고수하며 은은한 압박을 취했다.

그러나 사이사이 뼈있는 얘기가 오갔다. '공천' 문제를 놓고는 더더욱 그랬다. 이명박 당선인은 박 전 대표가 도착하자 접견실 문 앞까지 나가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이어진 회동에는 이 당선인측 임태희 비서실장과 주호영 대변인, 박 전 대표 측의 유정복 의원과 이정현 특보가 배석했다.

이 당선인은 "정말 수고 많았다" "박 전 대표가 도와주셔서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며 박 전 대표가 적극적인 지지를 해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박 전 대표도 "당원으로 당연히 도리다. 정권교체를 해주셔서 정말 다 잘됐다"고 말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 회동은 공천 갈등을 반영하듯 곧바로 치열한 신경전으로 흘렀다. 박 전 대표는 "선택을 받기까지 굉장히 국민에게 약속을 많이 했다"며 "우리가 정말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약속을 다 지켜야할 거 같다"고 선수를 쳤다.


이번 공천에서 박 전 대표측에게 이 당선인이 약속했던 '국정현안을 협의하는 정치적 파트너 및 소중한 동반자'라는 표현에 걸맞는 역할을 달라는 압박으로 해석된다.

이 당선인은 이에 "2004년에도 공천에서 참 개혁을 진짜 제대로 했다. 그 전통을 살려서 아주 눈에 보이지 않게 한당이 오랫동안 그동안 도와주십시오하고 약속도 많이 했다"는 말로 응대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2004년 탄핵역풍으로 어려운 속에서도 대대적인 공천 물갈이를 통해 120석을 얻는 선전을 한 바 있다. 내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목표로 하는 한나라당이 공천 개혁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박 전 대표는 이에 "사실 공천 문제나 기타 이런 게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초석이 된다. 거기서부터 삐꺽거리고…"라며 공천 문제를 직접 거론했다. 이 당선인측의 최근 행보를 겨냥한 것으로 풀이됐다.

특히 박 전 대표는 "세 가지를 부탁드리겠다"면 첫째 경제 활성화, 둘째 국가 정체성 확립, 셋째 정치 발전 등을 언급했다.

임태희 당선인 비서실장이 기자들을 내 보내고 하자는 식으로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박 전 대표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준비한 발언을 묵묵히 해 나갔다.

이에 이 당선인은 "국민 볼 때 이사람들 밥그릇 챙기나 그렇게 하고 말이지"라고 맞장구를 치며 "아주 공정하게 국민들이 정치권에 바라는 게 있고 또 한나라당에 바라는 게 있다"라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내년 총선에서 정치권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같은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박 전 대표가 사용한 용어는 "정치 발전"이고 이 당선인이 사용한 단어는 "정치 변화"다. 두 사람간 차이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박 전 대표는 "대통령됐으니까 정치 발전에도 관심을 갖고 발전시켜주길 바란다"고 했다. 경제뿐 아니라 정치도 챙기라는 주문이다. 반면 이 당선인은 정치권 변화에 방점을 찍었다. 그가 누차 강조해온 여의도식 정치 탈피의 일환으로 읽힌다.

이 당선인은 그러면서도 "정치변화도 이제 지난번에 이미 시석을 깔았다"며 "잘 깔아서 박 전 대표를 높이 평가하는데 사심없이 하면 된다"고 대답하는 것으로 갈등 봉합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당헌당규에 따른 조기 공천를 우회적으로 요구한 데 대해 이 당선인이 원론적 답변을 한 것이란 해석도 내놨다.

이에 이 당선자는 "정치변화에 있어 박 전 대표가 지난번에 이미 시설을 잘 깔았고 그 점을 높이 평가한다. 나 혼자 하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사심없이 하면 같이 하면..."이라고 협력을 거듭 당부했고, 박 전 대표는 "그렇게 하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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