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정서 올해부터 '본게임'

여한구.황국상 기자 2008.01.02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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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가스 줄일 수 없다면, 탄소시장 먼저 점령하라

'희대의 사기극인가, 지구와 인류를 구할 묘안인가.'

서울 가락동 농산물 시장에서는 흙내 나는 채소를, 노량진 수산 시장에 가면 신선한 횟감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탄소 시장'에서는 시커먼 탄소 덩어리를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형체도 없는 '무언가'를 놓아두고, 여기에 숫자와 가격을 매겨 시장에 내놓는다. 이 '무언가'는 현재 유럽에서 1톤당 최고 22~24유로(3만원~3만2000원)에 팔리고 있다. 그나마도 이 형체도 없는 것의 가격은 더욱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탄소 시장이 '발등의 불'로 떨어진 온실가스 감축 문제의 해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도대체 탄소 시장이 무엇이길래 지구촌이 목을 매달고 있을까. 이명박 새정부서도 인수위원회에 지구온난화 태스코포스(TF)팀을 별도로 배치해 탄소 시장에 적극 뛰어들 태세다.

탄소 시장은 지구온난화 해법에 관한 지구촌 각국의 협상 과정에서 탄생한 산물이다. 선물 시장은 그나마 실물을 근거로 하고 있지만, 탄소 시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탄소를 대상으로 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이른 것처럼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위협"인 지구온난화에 대처하기 위해, 인류는 역설적이게도 이같은 사상 초유의 제도를 고안해낼 수밖에 없었다. 또 이 시장 덕분에 좀 더 많은 이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행동에 나서게 됐다.

◇"탄소가 희망"=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총회에서 기후변화 시대 신경제를 낳은 '교토의정서'를 채택했다. 영국, 일본, 독일 등 26개 주요 선진국을 비롯한 총 39개국에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2% 줄이는게 핵심이다.

이에 따라 의무를 지게 되는 각국은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원인인 에너지 소비를 확 줄여야만 했다. "경제에 부담이 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미국은 심지어 2001년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해버렸다.


그래도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전제는 여전히 유효했다. 참가국의 불만도 다스리고 온실가스도 줄이는 '꿩먹고 알먹고'식의 묘안이 바로 '청정개발체제(CDM)' '공동이행(JI)' '배출권 거래(ET)'다.

청정개발체제와 공동이행은 한 국가·기업이 다른 국가·기업에 청정 에너지 기술을 투자하고 이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외부 활동 외에도 자국·자사 내에서도 에너지 절감이나 효율 제고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실적을 확보하는 것도 가능하다. 어떤 기업이나 국가는 의무감축량 이상의 감축 실적을 달성하게 될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남아도는 감축실적은 곧 '원래 내가 배출할 수 있었던 권리(배출권)'에 다름 아니다. 이 '권리'에 가격을 매겨 사고 팔 수 있도록 한 제도가 바로 '배출권 거래제'다. 이같은 제도를 통해 인류는 비로소 '탄소 시장'을 맞이하게 됐다.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기 위한 최초의 실효성 있는 국제 협약인 교토의정서는, 올해 2008년부터 1차 이행기간에 접어들게 됐다. 시장은 제도보다 발이 빨랐다. 이미 2005~2007년간 제1기 유럽탄소거래제(EU ETS)가 시행됐고 올해부터 2012년까지 2기에 접어든다.

이와 비슷한 원리를 이용해, 미국 시카고 거래소(CCX)와 호주 거래소(ACX) 등 의무감축국이 아닌 곳에서도 탄소 시장은 속속 뿌리내렸다.

◇한국 탄소시장은 '걸음마 단계'=전 세계 탄소배출권 거래량은 2005년 7억1000만톤 수준에서 2006년 16억4000만톤으로 2.3배, 시장 거래 규모도 같은 기간 108억6000만달러에서 301억달러로 2.8배 성장했다.

지역별로 나눠져 있던 탄소 시장간 결합도 급진전되고 있다. 현재 미국·캐나다 일부 지방정부와 유럽연합(EU), 호주는 탄소 시장을 연계하기 위한 걸음을 내딛은 상태다. 중국·인도·브라질을 비롯한 개발도상국 중심의 탄소 시장이 만들어지면 기존 거대 탄소 시장과 연계될 가능성도 높다.

김현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미 2007년의 시장 규모가 700억달러였다는 자료도 있다"며 "탄소 배출권 시장은 2010년 1500억 달러가 될 것이라는 기존 전망치보다 훨씬 빠르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우리 정부도 지난 2005년부터 기업들이 청정 에너지 기술에 투자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면 그 실적을 등록토록 하는 '온실가스 감축실적 등록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온실가스 감축의무는 물론 목표치가 없는 상태에서 배출권 시장의 급속 확대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배출권 시장의 주체가 돼야할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바라기 어렵기 때문이다. 굳이 다른 회사에 돈을 주고 그 회사의 배출권을 사와야 할 필요가 없는데 먼 미래에 선뜻 투자할 기업이 많지 않다. 이런 현실상 '한국형 탄소시장'은 배출권을 공급하는 이들만 넘쳐나고, 사가는 수요자가 전무한 기형적 시장에 머물고 있다.

이에 대해 에너지관리공단은 기업이 감축실적을 쌓고 이를 등록소에 내놓으면 정부가 사들인다는 정부구매계획을 밝히고는 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수요자가 없는 상태인 기형적 시장 형태를 바꾸기는 힘들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실상 모든 국가에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부과한 '발리 로드맵'이후 내놓은 '제4차 기후변화 종합대책'을 통해 △배출권 거래소 설립 △배출권 거래 전문회사 설립 지원 △탄소펀드 조성 등을 추진하겠다고 뒤늦게 나서고 있다.

특히 '수요 창출'을 위해 눈을 해외로 돌리려 하고 있다. 국내에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만큼 국내 탄소 배출권의 수요자를 해외에서 찾겠다는 것이다.

오대균 에너지관리공단 온실가스등록소팀장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UNFCCC 총회시 공단은 EU 집행위 관계자와 만나 국내 배출권을 유럽 시장에 내놓는 방안에 대해 협의했으며 대화도 순조로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외 수요에만 의존하는 시장은 안정적으로 존속할 수 없다는게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한국형 탄소시장의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각 업종·기업별 배출량 상한을 정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임대웅 에코프론티어 경영전략실장은 "업종·기업별 온실가스 배출현황이 종합되는 대로 정부 차원에서 기업별 배출량을 할당하는 절차가 뒤따를 것"이라며 "이를 통해 지금의 온실가스 다배출 제조업 중심에서 저탄소 중심의 산업구조로 전환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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