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로 남북관계 요동칠까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07.12.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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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무드' 변화 불가피할 듯...당정갈등 격화 시각도

이번 대선에서도 부동층(floats)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이 이명박 후보를 선택하는데 주저하게 만든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17대 대선은 BBK로 시작해 BBK로 끝났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니 이 요인이 가장 컸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남북관계의 변화’ 또한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북관계는 지난 50여년 이래 가장 좋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북 정상이 지난 10월 만나 종전선언을 위한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도 비교적 순항 중이고, 북한과 미국이 서로를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며 수교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고 있다. 게다가 남북정상간 합의인 ‘10?4선언’의 후속조치를 위해 정치, 군사, 경제, 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남북회담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화해무드’는 이번 정권교체로 인해 상당 부분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북한은 한나라당을 대화 파트너로 잘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북미관계 개선 움직임은 남한의 전폭적 지지와 적극적인 중재 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남북관계가 삐거덕거릴 경우 남-북-미 삼각관계도 흔들릴 수밖에 없음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과거 정권과의 차별성 측면에서도 한나라당은 남북관계에 ‘메스’를 댈 가능성이 크다.

이는 시야를 6자로 넓혀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북핵문제 등을 놓고 북한과 미-일이 대립할 때마다 남한이 적극적으로 미-일을 설득하는 구조였다. 특히 노무현 정부는 미국내 온건파와 손잡고 6자회담에 가장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온 일본을 막후에서 설득시킨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런 구도가 지속될 지는 의문이다. 한나라당은 일본정부와 마찬가지로 북한의 비핵화를 대북지원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어 설득과 압박의 대상이 일본에서 북한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안별로 보면 북방한계선(NLL) 대립으로 남북정상회담의 최대 성과 중 하나인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가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철도 및 도로 개보수, 조선협력단지 건설 등 막대한 재정지원이 필요한 남북경협 사업에 바뀐 정권이 선뜻 지원을 허락할 지도 의문이다. 자칫 남북 군사회담이 파행으로 치닫기라도 하는 날이면 공든 탑이 통째 무너질 가능성도 있다. 남북 군사보장 합의는 모든 경협 사업의 선결조건이기 때문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정권이 바뀌면 여러 가지 변화가 있겠지만 특히 통일, 외교 분야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악조건 속에서도 끊임없는 대화 노력으로 신뢰를 쌓아 온 남북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다만 우려와 달리 정권이 바뀌었다 해도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역사적 큰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을 것이란 낙관적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이회창 후보의 지적처럼 이명박 당선자는 ‘보수’보다는 ‘중도’에 가깝고, 특히 대북정책에 있어 ‘유연성’을 강조해 왔다.



또한 현재의 북미관계는 어디까지는 북한과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고, 남한은 들러리를 서고 있는 구도이기 때문에 미국이 돌아서지 않는 한 ‘180도’ 정책 변화는 쉽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아무리 낙관적으로 보더라도 정권교체의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당선자의 대북정책은 ‘비핵?개방?3000’으로 요약된다. 한반도 비핵화를 최우선으로 추구하되, 정략적 접근을 배제하고 북한의 적극적인 개방을 유도해 10년 후 북한이 국민소득 3000달러를 이룰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얼핏 보기에 평화통일, 경제공동체, 비핵화 등 추구하는 목표와 방향은 노무현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방법에는 큰 차이가 있다. 어디까지나 비핵화가 최우선 전제조건이다. 비핵화가 입증돼야 뭐든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게다가 자존심 강한 북한이 한나라당의 ‘일방통행식’ 지원책을 선뜻 받아들일 지도 의문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대선에서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300만불 이상 수출기업 100개 육성(북한지역 내 5대 자유무역지대 설치) △30만 산업인력 양성(북한 주요도시 10곳에 기술교육센터 설립) △400km 신 경의고속도로 건설(대운하와 연계) 등을 제공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개방이라는 표현도 꺼려하는 북한이 다분히 체제위협으로 느낄 만한 이런 공약들을 반길 리 만무하다. 때문에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당정 대립이 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실용주의’의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내 보수강경파간 엇박자가 불가피하다는 것.



이런 상황을 충분히 짐작해서인지 노무현 정부도 ‘바꿀 수 없는’ 대북정책을 만들기 위해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리저리 특사를 파견하며 두 대통령이 공존하는 내년 1월, ‘종전선언을 위한 4자 정상회담’을 개최하려 하는 것도 이러한 차원에서 이해된다.

한 가지 아이러니 한 것은 내년 남북관계 순항을 위해 가장 큰 기여를 할 만한 세력이 ‘미국’이라는 점이다. 이라크와 아프간이라는 ‘늪’에 빠진 미국은 북한과의 성공적 협상을 통해 ‘외교력 우려’를 잠재우려 하고 있다.

대북관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주변 여건이 악화되긴 하겠지만 어차피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다”며 “다만 한나라당의 집권이 라이스 장관이나 힐 차관보 등 미국 내 온건파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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