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당사자들이야 아니라고 강하게 부인할 것이다. 하지만 이회창 전 한나라 총재가 ‘출마의 변’과 달리 끝까지 완주를 고집하고, 정동영 문국현 이인제 후보 등이 말로만 단일화를 주장하다 결국 ‘마이 웨이’를 가고 있는 것은 대선보다 총선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간접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대선 때 ‘김대업 마타도어’의 희생양이었던 그는 이번 대선에서 ‘BBK 의혹’을 자신의 정략을 위해 스스로 키우는 아이러니를 보여줬다. 특히 그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사전에 약속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박 전 대표의 집을 세 차례나 찾아가기도 했다. 여론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이 20%를 넘지 못해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 게 객관적 상황이지만, 내년 총선에서 지역구도를 바탕으로 한 일정 세력권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관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정동영 문국현 이인제의 단일화 협상 과정을 보면 그들이 (정동영 후보는 약간 다르지만 대체적으로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일화를 통한 대통령 만들기보다, 작지만 자신만의 영역을 고수해 내년 총선에서 (다음 대선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속셈이 더 크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어떤 비전과 전략을 갖고 국민들의 삶을 낫게 하겠다’는 공약은 거의 실종됐다. 검찰 수사결과 ‘김경준의 사기극’으로 드러난(물론 특검이 예정돼 있어 최종적인 판단은 유보해야 하겠지만, 특검을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게 검찰과 법무부장관의 판단이다) BBK 의혹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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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선거는 국회의원이나 골목대장을 뽑는 게 아니다. 5년 동안, 그리고 그보다 더 긴 기간 동안 대한민국을 잘 경영해 국민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지도자를 뽑는 선거다. 어떤 후보를 뽑느냐에 따라 앞으로 5년 동안 우리의 일상생활은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대선임에도 불구하고 정책이 뚜렷하게 제시되지 못하고 의혹이 난무하다 보니 유권자들이 대선 후보들에게 싫증을 느끼게 됐다. 그 결과가 낮은 투표율로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11시 현재 투표율이 21.8%로 2002년 대선 때의 같은 시간의 투표율(24.6%)보다 2.8%포인트나 낮다. 일부에서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70%에도 못 미쳐 역사상 가장 낮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대통령을 뽑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행사해야 할 주권’이다. 이런 주권을 행사하는 것은 국민으로서 권리이지만 의무이기도 하다. 아직 5시간 넘게 시간이 남았으니, 집으로 배달된 각 후보의 공약집을 읽고 투표장에 가서 소중한 한 표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