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패배..'BBK' 늪, '노무현' 벽 부딪쳐

머니투데이 김성휘 기자 2007.12.19 22:01
글자크기
기적은 없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결국 고개를 떨궜다. 이명박 후보와 격차를 초반보다 좁힌 건 사실이지만 "역전할 수 있다"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예견된 패배였다. 그 이유는 흥미롭다. 정 후보가 자초한 국면과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던 한계가 동시에 발목을 잡았다.



"BBK, BBK, 신물이 납니다"

지난 4월 본격 등장한 BBK 논란. 정 후보는 어느 정도 성과를 봤다. 한때 50%를 넘던 이명박 후보 지지율이 30~40%대로 내려앉았다. 유권자 상당수가 이명박 후보를 믿지 못하는 데 이르렀다.



하지만 BBK 공방은 이명박 후보뿐 아니라 공세를 주도했던 신당과 정 후보에게도 '독배'였다.

이명박 후보에게서 이탈한 표는 정 후보에게 오지 않았다. 이 후보가 다소 하락세를 보일 때도 정 후보 지지율은 15% 전후로 묶여 있는 이른바 '박스권'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유권자들 사이에서 정동영 후보의 구호에는 공감하면서도 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일종의 '인지 부조화'가 일어난 셈이다. 정 후보 본인도 지지율이 오르지 않아 답답해했다는 후문이다.


동시에 반작용이 커졌다. 이른바 BBK 역풍이다. 어느 택시기사는 "비비케이 하면 이제 신물이 난다, 맨날 뒤나 캐고 공격이나 하고..."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정 후보는 BBK 공방을 거치는 동안 '싸움꾼'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변신 노력도 있었다. 웅변을 풀고 "안아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BBK는 변신을 용납하지 않았다.

12월 5일 검찰의 이명박 후보 무혐의 결론 뒤 정 후보는 '공격 모드'로 유(U)턴했다. 다시 목소리를 높였고 하루에도 몇 번씩 "거짓말쟁이"란 말을 내뱉었다. 정 후보는 "날카롭고 공격적으로 보인다더라" 하고 스스로 인정했던 평가에서 한 발도 못나갔다.

BBK 공방으로 인해 정책 경쟁이 실종된 것도 패인이다.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에 대항마로 내세웠던 한반도 철도 공약, 중소기업과 통하겠다는 중통령 슬로건, 평화동영·개성동영이라는 브랜드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모든 것이 'BBK'에 휩쓸려 들어갔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 사이에 "도대체 BBK 공격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냐"는 비아냥이 나왔다.

정 후보로선 억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2007년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처한 위치였다.

그 바닥을 한 겹 더 파고들면 노무현 대통령이 등장한다.

"이명박 싫지만 노무현은 더 싫어"

선거의 성격은 대개 과거 심판형과 미래 전망형으로 구분된다. '시대정신'이 과거(현 정부) 심판에 쏠리면 정권교체론이 힘을 얻는다.

올해 대선은 철저히 과거 심판의 기반 위에 미래 전망이 얹혀있는 구조, 즉 참여정부에 대한 거부감 위에 그 대안이 누구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부분 선거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게 노무현 프레임이다. "누가 한나라당이 좋아서 찍나요. 나라 말아먹은 노무현보다는 낫겠다 싶은 거죠". 또 다른 택시기사의 말은 정확히 이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출구조사 결과 2002년 노무현 후보 지지자 중 32%만이 정 후보를 찍었다. "올해 유권자들은 정 후보를 찍지 않음으로써 노무현 대통령을 심판한 셈이다"(신당 관계자)는 평가가 설득력을 얻는다.

정동영 후보는 이걸 벗어나고자 무던히 애썼다. 인터뷰때 질문이 나오면 "노 대통령이 다시 출마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정 후보는 노 대통령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나라당은 이걸 잘 알았다. 끊임없이 정 후보를 향해 "참여정부의 황태자"라고 딱지를 붙였다.

정 후보로선 참여정부와 관계 설정도 힘들었다. 정 후보의 정치 스타일에 비춰보면 확실히 선을 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정 정도의 친노 지지층과 '친노'로 분류되는 당내 의원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때문인지 참여정부에 대한 정 후보의 입장은 왔다갔다 했다는 평이다.

정 후보는 선거운동 며칠만에 "다녀보니 국민의 상처가 이렇게 깊은 줄 몰랐다"고 털어놨다. 참여정부가 정말 '실패'했느냐엔 논란이 있지만, 참여정부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정 후보는 '노무현'이란 벽을 넘지 못했다. 당연히 이명박이란 큰 산도 정복할 수 없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