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발데즈호 사태가 되지 않으려면

안수현 한국외국어대 법대 교수 2007.12.18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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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머니칼럼]태안 원유 유출 사고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한국판 발데즈호 사태가 되지 않으려면


방송 화면 속 태안 앞바다에선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기름 양동이를 손에서 손으로 건네고 있었다. 태안 원유 유출 사고 이후 16일까지 열흘 동안 20만명의 사람들이 방제작업에 참여했다.

방제인력 중 10만명은 주민과 군경, 공무원이었고 10만명은 태안과 관계 없는 민간 자원봉사자였다. 즉, 이번 사고에 아무런 책임도, 이해관계도 없는 10만명이 추운 겨울 바람 속에서 기름 냄새 맡아가면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시민의 연대의식은 세계에 자랑하고 싶은 수준이다.



지난 7일, 해상크레인 부선(艀船) 삼성 1호와 홍콩선적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가 충돌하면서 국내 최대의 해양 오염사고가 발생했다. 삼성 1호는 삼성중공업소속의 예인선이 끌고 가던 3000톤급 삼성물산 소속 부선이다.

이 사건은 여러 면에서 18년 전에 발생한 미국 엑손(Axxon)사 소속의 발데즈호가 야기한 해양오염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규모면에서 '최대'의 해양오염사고라는 점, 선박소유자의 '책임'에 대한 대응 양상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1989년 3월 24일 미국 알래스카에서 발데즈호가 좌초되면서 약 4만㎘의 원유가 쏟아져 내렸다. 이 사고로 1600km의 해안이 오염됐고 수많은 수달과 해조류가 몰사했다. 3만4000명의 알래스카 어민과 지역민들의 생계가 큰 타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엑손사는 방제피해보상과 정화비용만 45억달러, 우리돈으로 약 4조1600억원을 지불했다. 이후 모빌사와 합병한 후 탄생한 엑손모빌은 오랜 공방 끝에 2006년 25억달러(약2조3100억원)의 배상금과 보상금을 부과 받았다. 지연이자를 합치면 징벌적 배상금액은 총 45억달러(약 4조1600억원)에 이른다. 엑손모빌은 여기에도 또다시 항소한 상태이다.

엑손모빌이 입은 무형의 손해는 경제적 손해 못지 않게 심각하다. 엑손모빌은 오염사고에 대한 은폐, 늦장 대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으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대상이 됐다. 또, 전 세계적으로 다국적 기업의 '오만'과 '무책임‘의 대명사이자 ’반환경기업‘으로 각인되어버렸다.


엑손모빌이 최근 연이은 석유가격의 폭등으로 수익면에서 2005년 미국 1위, 2006년 포춘지 글로벌 500대기업 매출규모 1위라는 기록을 보이면서도 유독 환경과 사회적 이슈에서만은 최악의 기업으로 각인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엑손모빌이 신속하게 책임감 있는 태도를 보였다면 이 정도로 이미지 손상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부 엑손모빌 주주들이 올해 주주총회에서 환경과 지배구조, 사회적 이슈에 관한 결의사항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사고 후 18년이 지난 오늘까지 법적인 배상과 책임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기업으로서 무책임하다'는 이미지가 더 문제다. 엑손모빌에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경영을 기대하기에 무리한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대상기업은 사고에 대한 내부조사를 철저히 해 원인과 책임문제를 조속히 규명해야 한다. 또 향후 재발방지장치를 강구해 대외에 발표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사전예방에 부단히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또, 우리 증시는 이러한 환경오염관련 소송진행과 그 결과에 대한 공시의무를 기업에 하루 속히 부과해야 한다. 미국 증시와 달리 우리 증시에서는 기업의 환경 관련 정보에 관심 있는 투자자와 회사 이해관계자들이 정보를 얻기가 그리 쉽지 않다.

1934년 증권거래법에 근거한 공시의무규정에 따라 미국의 기업들은 매해 환경관련 소송결과와 그 상세비용를 연차보고서(Form 10-K)에 자세히 기재한다. 따라서 누구나 'EDGAR'라는 전자공시시스템에서 해당자료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우리 증시에서도 기업의 환경소송을 비롯한 환경위험관리태세에 대한 정보를 주주와 회사이해관계자들이 쉽게 얻을 수 있도록 환경정보공시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증시, 주주, 나아가 기름 양동이를 든 시민들에 대해 기업이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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