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IMF 책임론'과 '잃어버린 10년론'

류병운 홍익대 법대 교수 2007.12.13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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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평]'IMF 책임론'과 '잃어버린 10년론'


정책 대결이 실종된 이번 대선 선거전에서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IMF 책임론’과 ‘잃어버린 10년론’이다. 그런데 이 논쟁마저도 미래 지향적인 적극적 정책의 제시가 아닌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에 호소하려는 경향으로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닌 것 같다.
 
‘IMF 책임론’은 현재 여권 후보도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보고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노무현 정부 5년의 실정을 포함해 지난 10년의 한국경제의 전반적인 침체가 IMF사태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침체, 청년실업 만연, 부동산 값 폭등과 세금 폭탄, 공무원 수의 대폭 증가와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등 현 정부의 실패의 늪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여권 후보로서는 ‘IMF 책임론’이라는 지푸라기가 여간 고맙지 않겠는가. 물론 객관적으로 IMF책임이 당시 외환위기를 초래한 김영삼 정부가 아닌 현재의 한나라당과 그 후보에게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이왕 회고적 주제가 나왔으니 지난날을 반추해 보자. 우리나라가 IMF의 구제금융을 신청할 때도 대선시기였다. 1997년에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하기 전부터 사실상 당시 IMF외환위기 등 국가경제를 주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문제는 IMF가 구제금융의 대가로 주권 제약적 경제정책들을 요구해왔다는 점이다.
 
IMF 외환외기를 불러올 당시 한국은 세계 11번째 경제 강국이었고 외환위기 직전만 해도 실제 경제상황, 즉 펀더멘탈도 괜찮았다. 당시 한국의 총 외채규모는 GDP 30%로서 개발도상국들 중에서는 최고로 낮은 수준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단기외환차입의 급증에 따른 일시적 유동성 부족이었을 뿐 구조적인 경제문제는 아니었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는 GDP의 몇 배 눈덩이 같은 외채를 안고 있는 남미 국가들에게나 적용하던 정책들을 한국에게도 요구해 왔는데 ‘준비된 대통령’을 자처하던 김대중 정부가 이를 100%이상 그대로 수용한 것은 납득하기 힘든 것이다.

그 정책들은 국가재정지출의 동결, 추가여신 규제, 심지어는 18%가 넘는 고율의 금리, 미국 달러 당 1800을 초과하던 환율 등과 같이 거의 한국경제의 숨통을 틀어막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중소기업이 있다면 그것은 경제이론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거의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IMF정책의 배경에는 국제금융시장에서 고리에 재미를 보던 미국 투자가들의 입김이 작용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IMF 정책의 문제점을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는 `세계화의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고 IMF조차도 최근 그 정책의 과오를 시인한 바 있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IMF의 정책을 수용하는 것 외는 다른 방안이 없었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레지아는 독자 노선을 고수 하면서도 외화위기를 극복하였다. 오히려 김대중 정부는 IMF사태 초기 이전 정부의 실정을 회고적으로 부각시켜 차별성을 강조하려고 한 감이 있다.

이미 주지의 사실이지만 IMF의 설립목적은 국제 환율 불안정을 막고 회원국의 일시적 외환부족을 해결하여 국제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한 국제통화의 관리체계이다. 고율의 관세와 자국통화의 평가절하 등 보호무역적 투쟁이나 `이웃국가 궁핍화 정책`(beggar thy neighbor)에 따른 자본주의의 위기와 나아가 세계대전을 경험한 국제사회가 브레튼우즈체제의 한 기관으로 설립한 것이 IMF이다.

또한 한국은 모범적인 IMF투자국이었다. 현금이 부족하면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을 수 도 있는 것이다. 물론 만성외채국들의 증가로 IMF가 내정간섭적 경제정책수단을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그 구제금융을 받는 것은 마치 국제사회에서 불량신용국가의 그룹에 등록하는 것 같은 찜찜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당시 외환위기를 6.25이후 최대 환란이라는 선전에 열을 올렸고 그 위기를 극복한 ‘장엄한 역사’를 자축하였다.
 
그러나 고살된 중소기업들의 주검위에 구제금융 등으로 풍부해진 유동성은 김대중 정부가 선도한 벤처기업의 열풍 속에 거품화했다. 이때 왜곡된 벤처기업에 대한 과잉투자는 IMF위기 그 자체 만큼이나 경제에 악역향을 미쳤다.


소비가 위축되자 미봉책으로 심지어는 미성년자들에게까지 신용카드가 남발되어 이후 경제에도 긴 그림자를 드리웠고 나이 어린 개인 파산자들을 양산하였다. 요컨대 IMF외환위기 그 자체보다도 그에 대한 미숙한 대응이 더 큰 문제였고 그로부터 한국의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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