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내도 퍼내도 기름띠 밀려오네…"

만리포(충남 태안)=정영일 김성휘 기자 2007.12.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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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의 바다'로 변한 만리포, 주민들 "희망이 없다" 망연자실

만리포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 역한 기름냄새가 코를 찔렀다. 흡사 공기에 불을 붙이면 붙을 것 같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올 정도다.

짙푸른 바다 위에는 검은색 원유가 띄를 이루며 해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밀물때라 원유띠가 밀려오는 속도는 더 빨랐다. 모래사장은 이미 검은 원유로 뒤덮인지 오래다.



"퍼내도 퍼내도 기름띠 밀려오네…"


지난 9일 찾아간 충남 태안군 만리포 모래사장에는 1000여명의 방재단원들이 해안으로 떠밀려 오는 원유를 걷어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푸른색 방재복을 입고 고무장갑과 고무장화를 신은 이들은 플라스틱 삽으로 바다위에 떠 있는 원유를 걷어내 양동이에 담고, 일렬로 줄을 서서 양동이를 폐기물 차량까지 날랐다.



원유를 담은 폐기물 차량은 만리포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바닷가를 쉴새없이 드나들고 있었다. 수포재를 이용해 원유가 더 이상 번지는 것을 막는 작업도 함께 진행됐다.

파도를 타고 밀려드는 1만톤이 넘는 원유를 일일이 손으로 퍼내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군인 김모 일병(22,32사단)은 "퍼내도 퍼내도 (원유가) 끊임없이 밀려온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날 아침부터 방재작업에 참여했다는 삼성자원봉사단 소속 임모씨(29)도 "한참 퍼내면 원유가 좀 줄어드는가 싶다가고 파도가 한번 치면 다시 또 밀려온다"고 말했다.


12월의 추운 날씨도 큰 적이다. 만리포 해안에서 ㅇ횟집을 운영하는 장모씨(43,여)는 "양말을 두겹이나 신고 덧양말까지 신었는데도 발이 너무 시리다"며 종종걸음을 쳤다.

이들은 한 구호단체에서 제공하는 컵라면과 뜨거운 커피에 간신히 몸을 녹여가며 작업을 계속했다. 이 단체에서는 이틀동안 8000개의 컵라면과 1만개의 커피가 제공됐다고 밝혔다.

수포재 등 방재장비가 부족하다는 호소도 끊이지 않았다. 주민들은 현장에 있던 충남도 관계자들을 향해 방재장비를 조속히 구해달라고 강하게 항의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이들을 더 절망적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검게 죽어가고 있는 바다였다. 방재작업에 참여하고 있던 만리포 주변 상인들은 한 목소리로 "만리포는 이제 끝났다. 희망이 없다"고 탄식했다.

청명횟집 사장 김인구(50)씨는 "대책도 없다. 막막하다"며 "TV 뉴스에까지 난 이상 관광객은 커녕 태안 근처에서 잡은 꽃게, 우럭, 어패류를 내다팔기도 힘들 것"이라고 한탄했다.

어민들의 분노는 정부를 향했다. 한 주민은 "이렇게 어민들이 많은데 해안에서 10킬로도 안되는 지점에 유조선이 다닐수 있게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정부를 성토했다.

한편 이날 만리포 해수욕장에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이인제 민주당 후보등 대선후보들이 찾아 방재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명박 후보는 1시간 정도 만리포에 머무르며 방재작업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방재대원들을 일일이 격려하기도 했다.

주민대표를 자처한 50대 남성은 "이 후보가 청계천 복원했다는데 만리포가 다 죽어간다 만리포를 살려달라.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후보는 "듣던 것보다 피해가 큰 것 같다"며 "당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태안반도 일대가) 특별재난지역으로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은 유세하지 않았다. 자원봉사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충남지역 유세도 중단케 했다"며 "전국 당원이 7~8000명이 되는데 당원들에게도 봉사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예정됐던 성남 모란시장 유세를 취소한 정동영 후보도 태안 현지에서 피해지역 민심을 다독이는 데 힘썼다.

정 후보는 태안 해양경찰서를 찾아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우선 급한 것은 방제이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라며 "피해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만전을 기할 것이고 저희 (정치권)도 힘껏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어 만리포 해수욕장을 찾은 정 후보는 오전에 도착해 일손을 거들던 손학규 공동선대위원장과 함께 기름섞인 모래를 제거하는 작업에 동참했다.

정 후보는 태안군청에서 방재작업 관계자들을 만나 "탱크에서 쏟아부은 기름을 손으로 흡착포로 닦아낸다는 것이 어찌된 일인가 싶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노무현 대통령, 한덕수 총리도 와 보셔야 할 것 같다, 지역 주민들께 마음의 위로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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