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그의 '행복한 눈물'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국장 2007.12.0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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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달력을 보면서 또 한해가 가는 걸 알게 됩니다. 요즘은 달력도 예술작품입니다. 2007년의 경우 눈길을 끈 것은 한화와 삼성의 달력이었습니다. 한화는 미국 화가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작품을, 삼성은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대표작들로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해링은 어린 아이의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려서, 워홀은 마릴린 먼로 같은 인물사진을 확대 복사하는 형식의 그림을 그린 작가로 유명하지만 이들은 팝아트 계열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팝아트는 말 그대로 대중의 예술입니다. 소수 부유층만 즐기는 미술이 아니라 일반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게 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960년대 초 미국에서 팝아트가 출범할 당시 이들은 상업디자인을 끌어들여 순수 미술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만화와 햄버거, 콜라병과 수프깡통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소재로 미술을 대중 곁으로 가져온 공로는 지금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 브루흐 '콜 니드라이'듣기.
유대교에서 속죄의 저녁 기도회때 부르던 성가곡



팝아트 계열의 미술가들 중에는 동성애자가 많습니다. 우리는 대개 동성애자를 사시의 눈으로 보지만 경험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동성애자는 이성애자보다 성품이 훨씬 부드럽고 평화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팝아트의 미술작품이 계속 인기를 누리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입니다.
 
↑리히텐슈타인의 '키스'<br>
너무 행복해 눈물을 흘린다.  ↑리히텐슈타인의 '키스'
너무 행복해 눈물을 흘린다.


팝아트 계열의 화가 중에는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리히텐슈타인은 신문 연재 대중만화를 소재로 그것을 확대하고, 점묘법을 구사해 작품을 만든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뽀빠이'(1961년)나 '차안에서'(1963년)를 보면 그림인지 만화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쉽고 편안합니다. 실물이 아니라 사진으로 보는 그림이지만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행복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삼성이 비자금을 조성해 구입했다고 김용철 변호사가 주장한 '행복한 눈물'(1964년)이 바로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지요.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행복한 눈물, 그것은 너무 좋아서, 행복에 겨워서 흘리는 눈물이지요. 김용철 변호사가 만약 요즘 눈물을 흘린다면 그건 행복한 눈물일 것입니다. 검찰에 불려가서 밤 늦게까지 조사를 받고도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을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검찰청사를 걸어나오는 눈이, 얼굴이 그렇게 빛난 사람이 있었나요.



게다가 매일매일 검사를 받겠다고 스스로 나서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보통사람은 한두 시간만 조사를 받아도 소변 색깔마저 노랗게 변하는데 말입니다.
 
그가 행복해 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알 것 같기도 합니다. 7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삼성에 근무하면서 100억원이 넘는 돈을 챙겼고,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얻은 기업의 내부정보와 자료를 갖고 나와서는 자신이 들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까지 합쳐 무한폭로를 해대도 성직자도 언론도 정치인도 검찰도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고, 받아적기에 바쁘니 신나고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 한마디에 대선 치르기에도 바쁠 여야 의원들이 나서서 특검을 결의하고, 검찰은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무차별 출국금지와 압수수색을 단행하니 말입니다. 그 결과 매출이 우리나라 GDP의 20%에 육박하는 삼성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희열이, 행복감이 오죽하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은근히 걱정은 됩니다. 김용철 변호사야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도 덩달아 이렇게 행복해 해도 되는 건지, 그의 행복한 눈물 때문에 우리가 나중에 혹시 피눈물을 흘리게 되는 건 아닌지 해서 말입니다.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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