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잠망경]통신위, 의미있는 변신

윤미경 기자 2007.12.0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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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위원회의 변신 모색..규제의 틀 과감히 바꿔야 한다

얼마전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꽤 '의미있는' 행사가 열렸다. 통신위원회가 '통신환경 변화와 통신위원회의 발전방향'이라는 주제로 사상 처음 세미나를 개최한 것이다.

발족한지 16년동안 단 한번도 단독 행사를 가져본 적이 없는 통신위원회다. 그런 통신위가 세미나를 단독 행사로 마련했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행보로 보인다. 더구나 세미나 내용이 향후 통신위의 역할변화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그동안 통신위는 휴대폰 보조금 단속과 규제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측면이 강했다. 통신위가 위법행위를 한 사업자들에게 부과하는 과징금 가운데 85%는 단말기 불법보조금에 대한 것이었다.

단말기 불법보조금 단속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지난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SK텔레콤과 KTF, LG텔레콤, KT재판매 사업자에게 부과된 과징금은 무려 2750억원. 지난 한해동안 부과된 불법보조금 과징금만 1039억원에 이른다. 웬만한 중견기업 연간 매출액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처럼 통신위의 역할이 불법보조금 단속에 치우치다 보니, '통신위원회는 보조금 규제위원회'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런 통신위가 올해부터 모습이 크게 달라졌다. 지난해 1000억원대의 사상 최대 불법과징금을 부과했던 통신위는 올들어 지난 4월 딱 한차례 196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데 그쳤다. 매년 증가했던 불법과징금 액수가 올해부터 갑자기 뚝 떨어졌음은 물론이다.

이에 대해 통신위는 "이동전화 시장이 많이 안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동전화 시장은 보조금 경쟁에 몰두하던 예년과 많이 달려졌다. 올해부터 보조금 규제완화가 본격화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소모적 경쟁보다 실속있는 경쟁으로 승부하려는 통신사업자들의 인식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통신위가 더 이상 불법보조금 단속에 머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게다가 통신경쟁 활성화를 위해 사전규제는 완화하고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형태로 규제정책도 바뀌는 시점이다. 유선과 무선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은 물론 통신과 방송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어, 이에 따른 신규서비스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올 태세다.

통신위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이런 변화된 시장을 감시한다는 것은 역부족이다. 하루 빨리 '사업자 규제'에서 '이용자 보호'로 역할의 중심축을 이동하지 않으면 사후규제기관으로서 제기능을 하기 어려운 처지다.



그러나 통신위가 '이용자 보호' 중심으로 역할을 재편하는데는 적잖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당장 공정거래위원회와 역할이 충돌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시장에서 '이중규제' 부작용이 불거질 우려도 있다. 공정위 역시 사후규제기관이다보니 불공정행위를 한 사업자를 이용자 보호 차원에서 제재하고 있다. 따라서 공정위와 통신위의 사전 역할분담부터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미국과 영국도 공정위처럼 일반적인 불공정행위를 규제하는 기관이 있지만 통신시장 특수성을 감안해 통신시장만큼은 별도의 통신전담 규제기관을 두고 있다. 미국은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있고, 영국은 방송통합규제기구인 '오프콤(Ofcom)'이 있다. 두 나라는 사후규제 관할권에 대해 통신방송 분야는 통신전담 규제기관이 행사토록 하고, 두 기관이 충돌이 일어났을 때 전담기관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정보통신부는 오는 2010년부터 광대역통합망(BcN)을 정착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불과 2년밖에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인터넷(IP)으로 통하는 BcN이 구축되면, 통신위의 '이용자 보호' 역할은 인터넷(통신)과 맞물리는 모든 지점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포털이나 콘텐츠, 개인정보보호 등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나 현재 통신위 '그릇'으론 역부족이다. 때문에 통신위는 이번 세미나를 통해 관련법도 제정하고 전문가도 영입하고 '통신이용자보호원'이라는 것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칫 규제기관간 밥그릇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동일시장 동일규제' 원칙을 위해 통신위의 이번 주장은 좀더 의미있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사후규제의 틀이 제대로 잡혀야 사전규제를 완화해서 경쟁 활성화를 유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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