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개선, 삼성電 백년기업의 조건

머니투데이 이경숙 기자 2007.11.3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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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기업의 조건]<끝-1>삼성전자와 국내 대기업의 도전과제

편집자주 사람 나이 100살엔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들다. 그러나 기업은 다르다. 기업은 100살이 넘어도 성장한다. 경제와 사회를 이끈다. 한국의 미래 증시를 이끌 기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머니투데이는 아시아지속가능투자협회(ASrIA), 에코프론티어와 공동기획으로 국내 대표업종 대표기업의 지속가능성을 9회에 걸쳐 분석한다.

지배구조 개선, 삼성電 백년기업의 조건


우리은행은 삼성생명 지분 2.5%, 49만6000주를 가지고 있다. 장부가로는 1421억여원, 장외시장가로 치면 3968억원에 달하는 자산이다. 외환위기 때 삼성차에 대한 긴급자금 융자 후 이건희 삼성 회장으로부터 받은 주식이다.

삼성생명 주식은 삼성그룹의 계열사를 서로 잇는 출발점이 된다. 최근 공시 기준으로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63,000원 ▼100 -0.16%) 지분 6.28%를, 삼성전자는 삼성카드 지분을 36.88%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카드 (43,200원 ▼400 -0.92%)는 제일모직의 4.9% 지분을 가진 주주다.



◇지배구조, '비자금 사태'의 출발점

그저 삼성전자의 고객이기만 하다면 이러한 복잡한 지분 관계를 굳이 다 알 필요는 없다. 그러나 투자자라면 사정이 다르다. 이 구조를 알아야 기업가치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10월 29일, "3년 전 퇴직한 김용철 전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법무팀장 계좌에 본인도 모르는 50억원대의 현금과 주식이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계좌는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에서 개설된 것이었다.

11월 24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2005년 10월 우리은행 삼성센터 지점을 압수수색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됐다. 당시 우리은행 직원은 제일모직 감사팀의 부탁을 받아 제일모직 직원 조모씨의 계좌를 불법으로 추적해 금융실명법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우리은행은 삼성그룹의 주거래은행이다.

삼성 그룹, 우리은행과 함께 삼성전자가 창사 이래 최대의 스캔들에 휘말렸다. 28일 열린 '2007 삼성테크포럼'에서 주우식 삼성전자 IR담당 부사장은 "투자가들이 예외없이 여러가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며 "IR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앞날이 태산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터져나온 무수한 '의혹' 중 삼성전자가 직접 연관된 것은 이용철 변호사의 폭로 내용뿐이다. 이 변호사는 “2004년 1월 청와대 법무비서관 시절 이경훈 변호사(당시 삼성전자 상무)가 현금 500만원을 보내 돌려줬다”고 밝혔다.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의혹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 김용철 변호사가 분식회계 의혹을 제기한 계열사는 삼성중공업과 삼성물산(각 2조원), 삼성항공(1조6000억원), 삼성엔지니어링(1조원), 제일모직 6000억원 등 5곳이다.



◇뇌물 의혹 외엔 직접 관련 없어

지분 관계로 봐도 삼성전자가 이 스캔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이유는 없다.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직원 90여명은 각 계열사에서 파견된 직원으로 구성된 '팀'일뿐, 삼성전자와 지분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삼성전자의 IR 책임자가 걱정을 '태산' 같이 하는 이유는 지배구조에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1.61%)과 가족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은 2.74%뿐이다. 삼성생명(6.28%), 삼성물산(3.48%), 삼성화재(1.09%), 삼성복지재단과 문화재단(0.07%) 등 관계사 지분을 합쳐도 10.92%다.



사실, 단일주주로서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는 삼성전자 '자신'이다. 자사주의 지분율은 14.04%다. 씨티뱅크(DR, 7.33%), 미국의 투자자문사인 CRMC(5.03%)가 단일주주로는 그 다음 순위다. 이들을 포함한 외국인 지분율은 47.57%다. 그런데도 삼성전자는 삼성 그룹의 스캔들을 회사의 리스크로 공유할 수밖에 없는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이미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알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펀드매니저는 "삼성전자는 낮은 지분의 최대주주에 의해 경영 의사가 결정되면서 지배구조가 취약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2~3년 동안의 주가와 실적이 그 증거"라며 "삼성전자가 적기에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해 경쟁업체로부터 추월 당할 위기에 놓였는데도 이에 대해 경영진에 책임을 추궁하거나 견제하는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하순, 머니투데이가 실시한 5대 증권사, 5대 주식펀드운용사 설문조사에서도 삼성전자는 3개사로부터 "10년 안에 수익, 사업의 지속성에 심각한 도전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10년 후에도 수익을 지속할 기업'으로 삼성전자를 꼽은 곳은 2개사뿐이었다.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보는 해외의 시선도 차갑다. 미국의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28일(현지시간) "삼성이 핵심사업인 반도체 경기 하강에 이어 뇌물과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우려가 등장하면서 이미지에 새로운 타격을 받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배구조 개선 기대" 주가 반등



그런데 주가는 올랐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직전인 10월 26일의 삼성전자 종가는 53만2000원. 11월 29일의 종가는 56만4000원으로 이보다 6% 이상 올랐다. 그동안 코스피지수는 2028.16에서 1877.56으로 7%가 하락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김 변호사가 2차 기자회견을 가졌던 5일,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비자금 특검법안을 수용한 27일, 출렁이며 53만원선 안팎으로 하락했다가 28일 이후 코스피보다 크게 올랐다.

국내외 투자자들은 '삼성 비자금' 사태를 오히려 지배구조 개선의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강신우 한국투신운용 부사장은 "시장 참여자들이 앞으로 삼성전자 지배구조와 회계 관행이 더 개선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IT 업종 전체의 주가가 '바닥'이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현재 삼성전자의 PER(주가수익률)은 10배로, 코스피 PER인 12.5배보다 낮은 상태다.

강 부사장은 "(비자금 사태 관련)불확실성은 삼성전자 주가에 부정적 요인이긴 하지만 과거 요인"이라며 "주가 변동성은 커져도 급락 위험은 클 것 같지 않다"고 내다봤다.

69년생, 만 38세의 삼성전자가 백세기업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도 시장이 기대하는 바와 같다. '지배구조 개선.'



강 부사장은 "IT산업은 제품 수명이 짧고 투자규모가 크기 때문에 특정 IT기업이 설사 백년을 살아남을 순 있더라도 위상을 유지하기는 어렵다"며 "지배구조가 투명하고 확고해야 IT 기업은 수익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SRI투자자, "한국 대형주 지속성에 낙관"

'지배구조 개선'은 사실 국내 대기업들 공통의 도전과제다. 박유경 아시아지속가능투자협회(ASrIA) 연구원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 이슈는 대부분 그룹오너들의 경영권 문제와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쁜 지배구조를 가진 기업은 우리가 기업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재무제표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들고 또한 기업 전반에 심대한 불확실성을 던져준다"고 설명했다.

기업 지배구조가 나쁘면 사회적, 환경적 리스크도 높아진다. 박 연구원은 "불량한 지배구조는 기업 내 합리적인 의사결정구조의 부재 즉 기업경영의 경직성으로 나타난다"며 "이 경우 노사관계 등 사회적, 환경적 리스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과연 국내 대기업들이 지배구조 개선이라는 도전과제를 잘 이행하고 GE, 씨티로 이어지는 '백년기업'의 역사를 쓸 수 있을까?



미국의 대표적 사회책임투자(SRI) 펀드운용사로 꼽히는 보스턴커먼자산운용의 로렌 컴페레 펀드매니저는 한국 대표주의 지속성에 낙관적 견해를 나타냈다. 보스턴커먼자산운용의 SRI 펀드는 한국 종목 중 삼성전자, 포스코 (375,000원 ▼500 -0.13%), 현대차 (250,500원 ▲4,500 +1.83%), 국민은행 (0원 %)을 보유하고 있다.

자사 투자종목을 탐방하러 10월말 방한했던 컴페레 매니저는 "한국 종목들은 중국, 러시아 등 다른 신흥시장보다 지배구조가 좋고 투명성도 높아 SRI펀드가 선택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정보를 선진국 기업보다 적게 공개하기는 하지만 다른 신흥시장 기업보다는 많이 공개한다"며 "신흥시장에 대한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라도 한국 대형주는 중요한 투자대상"이라고 말했다.



백년기업을 꿈 꾸는 기업가에게 지금은 절망보다 희망의 비중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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