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삼성 특검법 수용한 4가지 이유

머니투데이 권성희 기자 2007.11.2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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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국회 재의 가능 ②압도적 여론 ③가장 비용 적은 방안 ④당선 축하금 부담

노무현 대통령이 27일 삼성 특검법 수용 방침을 밝혔다. 깊은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이다.

청와대는 삼성 특검법에 문제가 많다는 점을 여러 차례 피력해왔다. 수사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수사 기간이 너무 길어 사법체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특검법이 정치적으로 왜곡되고 정략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며 근본 해결책으로 공직부패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촉구해왔다. 삼성 특검법과 공수처법을 함께 처리하지 않으면 거부권 행사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혀왔다.



그간의 이런 입장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삼성 특검법을 수용키로 최종 결정한 이유는 삼성 특검법이 압도적인 표차로 국회를 통과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돌려 보내도 재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삼성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해도 국회는 재적 의원(299명) 과반이 본회의에 출석해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재의결할 수 있다. 이 경우 삼성 특검법은 재의결 즉시 발효된다.



삼성 특검법이 지난 23일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 이미 재적 의원의 과반이 넘는 189명이 출석해 출석 의원의 3분의 2가 넘는 155명이 찬성했다. 이를 두고 노 대통령은 "특검법이 통과할 때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그런 상황이 재의 요구를 한다고 해서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재의 가능성이 높은 법안을 거부할 경우 노 대통령이 져야 하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거부권은 대통령이 입법부에 맞서 쓸 수 있는 마지막 카드다. 이 카드가 효과를 보지 못하면 대선까지 20여일 남짓, 임기 3개월이 남은 노 대통령의 위상은 급격히 추락한다.

노 대통령은 "대통령은 정치인"이라며 "사회 운동가나 사상가나 지사에게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행동이 원칙이고 보편적이지만 정치는 결과를 고려하면서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판단은 정치에는 없다"고 말했다. "이 판단은 정치인으로 하는 판단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도 했다.


아울러 삼성 비자금 의혹을 해결하라는 국민적 여론도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날 삼성 특검법 수용 의사를 밝히는 긴급 기자회견 전에 열렸던 국무회의에서 "여론이 압도적으로 돌아가 버렸다"며 "그러니 (삼성 특검법은) 감당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국무회의에서 법무부는 객관적으로 하자가 명백한 특검법안의 정상적인 시행이 곤란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재의 요구권 행사 검토 의견을 제출했다. 이에 대해 국무위원들은 법무부의 법리적 해석에 동의하면서 다수가 재의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국민 여론과 대통령에게 가해지는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수용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노 대통령은 이런 의견을 다 들은 뒤 "재의 요구를 해 놓으면 그 과정에서 기업은 기업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옥신각신하면서 정치적 소모, 경제적 손실이 더 클 수도 있다는 판단이 있다"며 수용 방침을 밝혔다.

현재 상황에서는 삼성 특검법을 수용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좋은 성과, 좋은 변화의 자극제가 되도록" 하는 방안이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노 대통령이 당선 축하금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마당에 삼성 특검법을 거부하면 자칫 당선 축하금 수사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의심까지 살 수 있는 상황이란 점도 고려됐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특검법이 특검의 특정성과 보충성 원칙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고 특검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문제점 때문에 삼성 특검법을 거부했다고 주장해도 당선 축하금이 수사 대상에 포함돼 있는 상황에선 이 같은 입장이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

노 대통령은 이같은 이유로 삼성 특검법이라는 평소 원칙과 신념에 어긋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자회견은 원칙에 어긋난 판단을 하는 이유에 대한 변명의 장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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