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에서 IT로, '그린 화학'의 꿈

이경숙,오상연 기자 2007.11.20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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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기업의 조건]<5-1>환경규제 강화 속 LG화학의 기회와 리스크

편집자주 사람 나이 100살엔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들다. 그러나 기업은 다르다. 기업은 100살이 넘어도 성장한다. 경제와 사회를 이끈다. 한국의 미래 증시를 이끌 기업의 조건은 무엇일까? 머니투데이는 아시아지속가능투자협회(ASrIA), 에코프론티어와 공동기획으로 국내 대표업종 대표기업의 지속가능성을 9회에 걸쳐 분석한다.

↑LG화학이 출시한 시스템가구 '지인(Z:IN)'. ↑LG화학이 출시한 시스템가구 '지인(Z:IN)'.


새내기 주부 신 과장(34). 요즘 그의 가방 속엔 늘 가방 하나가 더 들어 있다. 장바구니 겸용 얇은 천가방이다. 퇴근길 할인점에서 그는 이 천가방을 꺼내든다. 비닐봉투값 50원이 어딘가. 게다가 비닐봉투는 환경에 나쁘다지 않은가.

올해 4월,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다음 세대엔 비닐봉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비닐봉투 주재료가 토지 등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탓이다.



화학산업의 대표상품, '비닐의 굴욕'은 이어진다. 최근 삼성전자는 모든 제품의 LCD 패널에서 PVC(폴리염화비닐)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노키아, 소니, 마쓰시타 등 대형 IT기업들은 2005년부터 부품업체들에 유해물질, PVC 등 난연제의 제거와 감축을 요구했다.

◇업황 악화 속 '독야청청'한 실적



GE는 떠났다. 바스프(BASF)도 떠난다고 했다. 대표 브랜드들이 속속 떠나자 시장엔 흉흉한 소문이 나돌았다. 석유화학산업의 장기 전망이 훼손된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원유가 급등도 악재다. 화학제품의 재료가 되는 에틸렌은 나프타에서 나온다. 나프타는 원유 처리과정에서 나온다. 올해 들어 유가가 급등하지 나프타 가격도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추세도 화학산업엔 악재다. 유럽연합(EU)은 '전기전자 폐기물 처리지침(WEEE)'과 '특정 유해물질 사용제한지침(RoHS)’을 발효한 데에 이어 내년 6월부턴 ‘신화학물질관리(REACH)’ 에 들어간다. 중국에선 '전자정보제품오염방지관리법(RoHS)', 우리나라에선 '자원순환법'이 제정됐다.


안 그래도 PVC엔 줄곧 '환경호르몬과 다이옥신 배출의 원흉'이라는 악명이 따라다녔다. 선진국 중심으로 소비자 반발과 정부 규제가 높아지자 선진국 기반 화학업체들은 사업에서 손을 떼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국내 화학산업의 대표주자, LG화학 (316,500원 ▼3,000 -0.94%)에 대한 증권가의 호평은 이어진다. '이익 안정성 개선', 'LG석유화학 합병을 통한 시너지'가 그 근거다.



무엇보다 PVC, ABS, 합성고무 등 LG화학의 주력상품이 여전히 잘 팔린다. 이광훈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위원은 “LG석화 합병 후 에틸렌 기준 생산량이 168만톤에 달한다"며 "이는 석유화학제품 생산량으로 아시아 3~4위권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합병은 '경기 민감업종'이라는 약점을 보강할 것으로 기대됐다. 나눠져 있던 생산체계가 하나로 합쳐진 덕분이다. 이전엔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은 LG석화가, 합성수지, 합성고무 등 계열제품은 LG화학이 생산했다.

이응주 대우증권 선임연구원은 "LG석화는 순현금만 3500억원이 넘는 우량회사"라며 “단순히 2개의 회사가 합쳐진다는 의미보다 새로운 성장동력에 필요한 실탄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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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봉투에서 배터리로' 5년 후 정보전자 비중 37%로



GE, 바스프가 떠난 시장에서 LG화학이 선전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분석가들은 '수익원의 다변화'를 비결로 꼽는다.

LG화학은 중국 시장 비중이 큰 제품을 직접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다. 원부자재 생산지가 가깝다는 장점도 있다.

강윤구 LG화학 IR부장은 "석유화학은 중국 수요가 가장 크다"며 "세계 PVC 수요 3500만톤 중 1000만톤, ABS 수요 600만톤 중 400만톤이 중국 수요"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중국 ABS 수요 중 26% 점유한다. 강 부장은 "현재 저장성 닝포 공장에서만 ABC를 50만톤 생산하고 있는데, 앞으로 PVC, ABS공장 규모를 더 키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LG화학의 진짜 무게를 두는 미래 성장축은 따로 있다. 바로 정보전자소재 부문이다. 현재 LG화학이 PE(폴리에틸렌) 등 석유화학제품에서 얻는 매출 비중은 60%다. 나머지는 산업건자재에서 22%, 정보전자소재 부문에서 17%를 얻는다.

반면, 다우케미컬 등 대형 화학업체들은 PE 매출 비중만 해도 60%를 넘어선다. PE만 비교하자면 LG화학의 비중은 30% 미만이다.



PE는 검은 비닐봉투, 온실용 비닐에 쓰이는 제품이다. 정보전자소재는 2차전지, 액정표시장치(LCD)의 편광판 같은 것들이다. MP3, PDA, 노트북 같은 휴대용 IT제품에 주로 쓰인다.
비닐에서 IT로, '그린 화학'의 꿈
LG화학은 2012년까지 정보전자소재 부문의 매출 비중을 37~38%로 높일 방침이다. 대신 석유화학제품은 50%, 산업건자재 12~13%로 줄일 계획이다. 한 마디로, '비닐봉지'에서 '배터리'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이광훈 연구원은 “LG화학은 올해 정보전자 부문에서 상당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며 "석유화학 경기가 2011년까지는 전반적으로 하향추세지만 LG화학은 수익원 다변화로 수익 안정성을 높이는 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석유화학제품은 여전히 산업사회의 중요한 기반이다. 에틸렌 제품들은 산업계의 '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박인 LG화학 환경안전팀 부장은 "PVC가 없었다면 지난 70여년 동안 인류를 나무를 베어 건축재를 만들었을 것"이라며 "화학산업은 이미 우리 의식주에 필요불가결하다"고 지적했다.

박 부장은 "원료, 부원료 모두 화학물질이라 화학산업이 환경 리스크가 높은 건 어쩔 수 없다"며 "그러기에 환경 안전은 우리에게 물과 공기만큼 핵심 이슈"라고 강조했다.

최근 LG화학은 건물일체형태양광발전사업(BIPV) 등 친환경 상품 시장에 뛰어들었다.



강 부장은 "정부가 짓는 대형 건물의 경우 전력의 5%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를 쓰도록 하면서 연간 200억~300억원의 시장이 조성됐다"며 "4~5년 후엔 이 시장이 1000억원 가량 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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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ㆍ고부가가치제품 개발, 공정거래 정착이 과제

전문가들은 LG화학이 좀더 적극적으로 친환경, 고부가가치 상품 개발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이응주 선임연구원은 “미국, 일본의 화학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 받아 주가수익률(PER)이 높아지고 있다”며 “PVC나 ABS 등 범용제품 외에도 고부가가치 아이템에 대한 경쟁력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대체재로 떠오르고 있는 바이오플라스틱 등 친환경소재는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제품이다. 도요타는 2020년에 전 세계 플라스틱의 20%를 바이오플라스틱이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수영 에코프론티어 팀장은 "이러한 예측은 월마트, 인텔, 델 같은 대형업체들이 PVC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는 추세와도 서로 통한다"며 "이에 듀폰 등 세계적인 화학 기업들이 친환경 원료물질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친환경제품 개발이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과제라면 '준법'은 기업시민이 지켜야 할 기본과제다.

지난 1일 서울지검은 LG화학과 대한유화공업, SK, 효성 등 4개 법인과 전현직 임직원 4명을 불구속기소했다. 담합을 자진신고한 삼성종합화학, 호남석유화학과 관계자들은 각각 벌금 50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공정위는 올해 2월 이들 기업 등 10개 업체가 1994년 4월부터 10년 동안 제품가격을 서로 짜고 정한 사실을 적발해 105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 죄질이 무겁다고 본 5개 업체를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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