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치가 박현주에게 보내는 편지

머니투데이 김동하 기자 2007.11.1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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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코리아' 대신 '바이월드'하세요…내부의 적·관료는 '주의'

(이 기사는 머니투데이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과의 인터뷰 중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편지글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익치가 박현주에게 보내는 편지


박 회장님. 이익치입니다.



제가 현대증권 회장으로 바이코리아를 외칠 때, 박회장님은 아마 압구정동 지점장쯤 됐을 겁니다. 이 업계에서는 제가 한참 선배인 것 같습니다. 허허.

우린 아직 일면식도 없지만, 전 박회장님의 승승장구를 잘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주 잘 하시고 있는 것 같아 흐뭇합니다.



요즘 인사이트 펀드가 돈을 많이 모으고 있다면서요. 나오자마자 3조원 넘게 팔렸다고 해서 '바이코리아'를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기자양반들도 그래서인지 연락을 많이 하시더군요. 여기저기 우려하는 소리도 들립디다.

박 회장님. 하지만 제가 보기엔 정말 잘 하고 있습니다. 인사이트 펀드는 글로벌 펀드라면서요. 3조~4조원이 아니라 몇 십조원을 모아도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아무리 크다고 걱정해도 세계 무대를 보면 그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합니다.

펀드 열풍이야말로 우리나라가 미국·영국에 이어 올바른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회장님도 잘 알겠지만, 자본주의 울타리안에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돈을 벌 수 있는 길은 주식이 최고 아닙니까. 개인들은 주식으로 돈을 벌고 싶어도 공포와 탐욕사이에서 갈팡질팡할 수 밖에 없지요. 펀드를 통해 열심히 일하는 우리 젊은이들이 재산을 늘려갈 수 있도록 해줘야합니다.


박 회장님. 제가 '바이코리아(BUY KOREA)'를 부르짖었다면 박회장님은 '바이월드(BUY WORLD)를 힘껏 외치십시오.

물론 쉽지 않을 겁니다. 바이코리아 당시에 10가지를 고려해야했다면 지금은 100가지를 고려합니다.



전세계의 좋은 투자처와 기업들을 찾아 나서십시요. 한국은 이미 성숙된 시장 아닙니까. 지금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제조업은 이미 한계로 치닫고 있습니다.

전세계로 나가 많은 지식인, 좋은 기업들을 만나고 투자하십시요. 금융·제약·영화·엔터테인먼트 등 첨단 서비스업에서 전세계를 무대로 뛰는 제2의 정주영, 이병철을 찾는 노력을 해주십시요. 이것이 바로 펀드가 할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진 금융기업들과도 협업을 통해 일천한 경험을 보충하면 좋겠습니다.

박 회장님. 미래에셋은 지금껏 아주 튼튼한 지배구조를 만들어 온 것으로 보입니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헤서웨이도 미래에셋처럼 단순한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현대가(家)를 둘러싼 형제간의 싸움, 공기업과도 흡사했던 3대 투신사의 구조조정문제 등 외풍에 시달리면서 실패했지만, 박회장님은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바이코리아 펀드의 경험처럼 시장의 굴곡은 앞으로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선장이 흔들리지않고 굳건한 운용철학으로 이끌어간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수많은 공무원과 관료사회의 시기와 질타는 있을 수 있습니다. 깨끗한 지배구조라면 그런 어려움도 쉽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리고 서둘러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잘 해오셨지만 당장 세계무대에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인사이트 펀드에 대해서도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은 환매기간이 6개월로 짧다는 점입니다. 성과를 길게 내다보고 환매기간도 최소 3년으로 길게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 회장님. 마지막으로 당부하지만, 잘 될때 늘 조심해야합니다. 적은 내부에 있기 마련입니다. 컴플라이언스 체제를 단단히하고 절대 서두르지 마십시요.

언젠가 업계에서 같이 만날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그 때가 되면 좋은 선후배로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습니다.



11월 12일

광나루에서

이익치



이익치가 박현주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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