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이 만든 와인 - Domaine Chevrot

전두환 신한카드 부사장 2007.11.2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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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전두환의 와인이야기

지금은 11월 중순, 편안하게 숨을 쉬기도 어려운 거리에서 고맙게도 노랗게 물든 은행잎도 막바지인 요즘 거리에는 가로수에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 시즌 밤거리를 밝혀줄 나무에 조명을 입히고 있다.

늦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곧 다가올 음울한 겨울을 걱정하면서 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 사라져가는 아쉬움에 추억에 잠긴다. 흘러가는 세월은 젊은이에게도 너무 빠르다.



세계적으로 와인생산이 가능한 지역은 북위 30-50도, 남위20-40도 지역에 걸쳐 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위도 삼팔선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도 양조용 포도재배가 가능할 것 같으나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여름철에 강우량이 집중되고 겨울이 너무 추워 재배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 와인의 주요 생산지는 프랑스와 독일 그 남쪽의 이태리 스페인 등이며 영국은 타 지역으로 수출할만한 와인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주요 소비국으로서 와인 발달사에 많은 영향을 준 지역이다.



92년 봄 나는 런던에 있는 한 회사가 와인관련 잡지에 낸 기발한 광고를 보고 무릎을 쳤다. 내용은 "와인 밭을 한 고랑씩 일년간 분양함, 포도재배는 당사가 책임지며 회원간 친목도모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임" 나는 서둘러 계약을 하고 비록 한 고랑이나마 아래 와이너리의 주인이 되었다.

천사들이 만든 와인 - Domaine Chevrot


DOMAIN CHEVROT, Maranges Cote de Beaune, Cheilly-Les-Maranges

93년 11월 둘째 주인가 우리는 와인수확을 위해 프랑스 서쪽을 향해 여행을 시작했다. 메츠 그리고 19세기말 아르누보를 꽃피운 낭시를 지나 부르고뉴공국의 중심지인 디종으로 들어서면 이 지역은 로마시대부터 부르군트족이 자리하였기 때문에 프랑스의 대부분인 프랑크족지역과 색다른 지방색을 나타낸다.


디종은 닭요리 꼬꼬뱅, 겨자의 발상지로 달팽이요리가 유명하다. 늦가을의 Cote D'or는 왜 이 지역을 황금의 언덕이라 부르는지 실감이 났다. 지금쯤 영동이나 영천지방에 가면 예의 그 포도나무의 황금색 단풍을 즐길 수 있다.

우리의 목적지는 워낙 소읍이라 포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은 처음이라며 진심으로 우리를 반겼다. 인심 후한 주인과 충분히 와인을 시음하고 세상을 거머쥔 기분으로 두 박스 24병의 90년 빈티지 와인을 차에 싣고, 읍내에 중심 조그만 광장(세 사람 정도가 팔을 벌리고 서면 꽉 차버리는)에 있는 아담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 요기와 맥주 한잔 정도 생각하고 들어선 광장 맞은편 선술집의 몇몇 손님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고정되었다. 30분정도 지나자 저녁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둘 삐꺽거리는 문을 밀고 들어오면서 놀라는 기색으로 우리를 힐끗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우리 테이블주위에 자리 잡았다.

잠시 지속된 팽팽한 긴장감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보낸 핑크빛 와인한잔을(White Wine에 Cassis열매로 만든 Creme De Cassis De Dijon 을 칵테일 한 술)내가
단숨에 마시고 잔을 들어 감사를 표하자 사방에서 박수소리가 나며 일시에 허물어졌다.

이후 온갖 종류의 브르고뉴의 주도 본느지방의 각종 술들을 맛본 후, 밤이 깊어지고 읍내에서 제일 예쁘다고 추천된 아름다운 아가씨와 춤도 추고 각자의 노래를 부르고 급기야 각자의 언어로 온갖 이야기를 해도 우리는 서로 통할 수 있었다.



밤은 더욱 깊어지고 아쉬움을 표하며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동안 조용히 미소만 짓고 있던 한 남자가 불쑥 나서며 자기 집으로 가자고 우리를 초대했다. 놀랐지만 정중히 거절하자 그는 자기 생일이 지난주였는데 우리와 함께 생일파티를 해야 한다고 우겼다.

그러자 사방에서 별별 이유를 들어 우리를 초대해야 한다고 팔을 당겨 조그만 광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다음 달 크리스마스 연후에 다시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수습이 되었다. 호텔로 오는 짧은 길에 달빛이 아름다웠다.

11월 보졸레 누보가 출시될 무렵이면 나는 지키지 못한 그해 크리스마스 약속 때문에 그 천국 같은 소읍광장과 천사들을 그리워하며 가끔 불면에 시달린다. 본느에서 맛본 브르고뉴의 그 찬란한 피노누와 와인들보다 수십 배나 깊이 있고 향기 나는 프랑스 시골 농부들의 마음씨를 꼭 다시 느끼고 배우고 싶다.



그들은 잊지 않으려고 한 병 남긴 Domaine Chevrot는 평생 보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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