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은행업은 죽었다"

머니투데이 정희경 금융부장 2007.11.1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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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도 당초 동의했다. 현재 특정 업체가 반대하고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1곳이다. 대외신인도를 감안해서라도 특정 회사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만난 시중은행장은 내년 4월로 예정된 방카쉬랑스 4단계 시행을 연기하자는 보험업계 주장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보험사 이름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으나 짐작이 어렵지 않았다. 은행들이 자동차보험과 보장성보험 판매가 허용되는, 4단계 방카쉬랑스에 어느 정도 집착하는지도 실감했다.



은행장의 '과감한' 발언은 요즘 은행권에선 공공연히 제기되는 위기론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위기의식은 미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 따른 신용경색 충격이 아니라 수익성의 악화에서 출발한다.

은행의 대출 증가세가 갈수록 둔화하고, 예금은 증권 쪽으로 이탈하면서 순이자마진(NIM·님)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님'이 0.14%를 기록한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시중은행의 '님'은 불과 2년 전 3%를 웃돌았으나 현재 2% 중반으로 내려앉았다.



국내외 경쟁도 치열해져 '외형'을 늘리기도 만만치 않다. 은행들이 크든 작든 해외 진출이나 인수·합병(M&A) 투자은행(IB) 등을 내세우는 것도 위기의 이면일 뿐이다. 여전히 조단위의 순익을 내는 상태에서 엄살로 비쳐지기도 한다. 그러나 "떠난 '님'아∼" 타령 대신 '조기대응'을 선택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여기서 걱정스런 대목은 일종의 '쏠림현상'이다. 최근 수년간 대출이 당국의 '지도'에 쫓겨 주택에서 중소기업으로, 다시 가계신용 등으로 몰려다녔듯 M&A나 IB도 또다른 유행의 코드로 자리잡은 모습이다. 은행간 차별화는 눈에 띄지 않고 "다들 하는데…"라며 추종하는 양상이다.

사실 국내 은행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은 세계 금융사를 보면 새로운 게 아니다. "은행업은 죽었으나 은행은 살아 있다." 미국 웰스파고은행이 90년대 내건 이 캐치프레이즈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장한계에 부딪치면서 나왔다. 예금과 대출이라는 전통적인 은행업으론 수익을 늘리지 못하자 변신을 시도한 것이다.


웰스파고는 예금과 대출만 파는 은행업을 버리고 보험 등 비은행 상품까지 적극적으로 취급했다. 기존 핵심상품의 일부만 보유하고 있는 고객들에게 여타 상품을 하루에 몇개 판매하는가를 직원 성과지표의 하나로 관리한 결과 비이자수익이 40%를 웃돌았다.

웰스파고 역시 비은행 회사도 확보했지만 기존 고객을 제대로 붙잡았다는 점이 돋보였다. 수익 증대분의 80%가 기존 고객에 대한 교차판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비은행부문에 직접 진출하지 않더라도 다른 회사 상품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M&A에 상응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국내 은행들은 웰스파고를 비롯해 선진국 사례를 벤치마킹하며 성장엔진을 찾는 데 여념이 없다. 최근 행보가 한국의 은행업이 아니라 각각의 은행을 과연 살리는 것인지 한번쯤 점검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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