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욕망을 인정하되 채워주지는 말라

김지룡 외부필자 2007.11.1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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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허구헌날 늦게 들어오는 거야."

내 아내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허구헌날’인 것 같다. ‘항상’ ‘늘’ ‘절대로’ 같은 말도 많이 쓴다. ‘밖에 나가기만 하면 왜 항상 술을 마셔.’ ‘절대로 집에 늦는다고 전화하는 법이 없구만’ 등등.

몇 년 전만 해도 아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말다툼을 벌였다. 누명을 쓴 것 같아 억울했다. “내가 언제 허구헌날 늦게 들어왔다고 그래? 지난 주 화요일, 목요일에 일찍 들어왔잖아.”라고 아내의 말을 반박하는 증거를 들이밀거나, “누군 늦고 싶어서 늦어. 일이 많으니까 그렇지?”라며 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증거를 들이대고 이유를 설명해도 아내는 수긍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너무나 명확한 증거를 보여주어도 아내는 물러서지 않고 계속 화를 냈다. 답답한 마음에 나도 언성을 높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말싸움을 하고, 하루 이틀 냉전을 벌이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제는 제법 현명해졌기 때문에 이런 불필요한 말다툼은 벌이지 않는다. 아내가 ‘허구헌날’ ‘항상’ ‘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어떤 일의 빈도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 단지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의 강도’를 나타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허구헌날’이라는 말은 그 말을 쓸 정도로 화가 많이 났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논리적인 답변을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먼저 그 감정을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왜 허구헌날 늦게 와’라는 말에 대한 올바른 대처법은 이런 말들이었다.
“미안해. 내가 요새 집안에 소흘해서 화가 많이 났지. 일찍 오도록 노력할 게.”
“미안해. 집안일 하느라고 많이 힘들지. 내가 좀 잘 해볼게.”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순간순간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며 살 수는 없다. 버스를 타고 가는 데 옆 사람이 10분이 넘도록 큰소리로 핸드폰 통화를 할 때, 성질 같아서는 한 대 확 때려주고 싶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감정대로 행동하면 내가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아이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 역시 먼저 감정을 받아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큰아이가 작은 아이를 때렸을 때 ‘어떻게 동생을 때릴 수 있어. 형제인데 서로 돕고 사랑해야지’라는 말은 별 소용이 없다. 큰아이에게 동생은 대개 부모의 사람을 빼앗아간 존재이고, 자주 귀찮게 만드는 성가신 존재다. 라이벌 의식이 들고 미운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작은 아이를 때린 큰 아이의 감정 그 자체는 받아들여주어야 한다.


“동생이 너를 많이 힘들게 하는구나. 그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 다른 사람을 때리는 일은 허용할 수 없단다.” 이런 식으로 아이의 감정은 받아주되 행동은 통제하는 것이 자녀교육의 기본일 것이다.

어른들도 자기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한다. 어린 아이에게 감정을 잘 조절하고 통제하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다. 먼저 통제해야할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마음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것은 어른이 되어가면서, 아니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수양해 나갈 영역이다.



경제교육 역시 ‘아이의 감정은 받아주되 행동은 통제하는 일’의 연속이다. 경제와 관련된 아이의 감정은 바로 ‘욕망’이다. 아이들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갖고 싶어한다. 사실 어른들도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생활할 수 없기 때문에 적절히 욕망을 통제하고 조절해야 한다.

경제교육의 첫 걸음은 아이에게 ‘내가 원한다고 무엇이든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해야할 일은 아이의 욕망은 인정해 주되 채워주지는 않는 것이다. 원한다고 무엇이든지 사주는 일은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떤 물건을 사 달라고 할 때 사고 싶다는 욕망 자체는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게 왜 필요하니?” “집에 가면 비슷한 것이 넘치는 데 또 사달라는 거야?” “너는 내가 무슨 현금지급기로 보이니? 왜 물건만 보면 사달라고 졸라.” 같은 말은 아이의 욕망과 감정을 무시하는 말이다.



일단은 “참 멋지게 생겼구나. 갖고 싶은 마음이 들겠네”하고 욕망을 인정해 준 뒤 “갖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사 줄 수는 없다.”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한다. 아이는 부모가 어떻게 판단하는지 꿰뚫어본다.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단호하게 ‘사줄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그리고 이유를 설명해준다.

아이가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경우는 대개 함께 장을 보러 갔을 때다. ‘그 물건을 사면 반찬을 사지 못한다’거나 ‘정말 필요한 다른 물건을 사지 못한다’ 등의 이유를 말해준다. 때로는 선의의 거짓말도 필요하다. 욕망을 조절하지 못하면 곤란하고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아이가 거절을 당했을 때 떼를 쓰거나 칭얼거리는 것은 물건을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보다 자신의 마음을 무시당했다는 것에 화가 나기 때문일 수 있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사 줄 수는 없다’는 식의 대응은 아이에게 “우리 부모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물건을 사주지 않더라도 아이가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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