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꾼의 헐벗은 발, 안나푸르나 울리다

안나푸르나(네팔)=희망대장정팀, 정리=이경숙 기자 2007.11.12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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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시아, 빈곤을 넘어]<6-1>네팔 성산(聖山) 속의 사람들

편집자주 2달러, 우리돈으로 약 1800원. 이 돈으로 아시아 인구 중 9억명이 하루를 삽니다. 21세기 이후 아시아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6.3%로 다른 지역의 2배에 가깝습니다. 아시아는 과연 빈곤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아 김이경, 윤여정, 주세운 등 세 젊은이로 구성된 '희망대장정'팀이 지난 9월, 아시아 최빈국의 빈곤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80일 동안 이어질 이들의 희망대장정을 머니투데이가 전해드립니다.

↑안나푸르나 산맥 지역주민들에게 신성시 여겨져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마차푸차르 전경. ↑안나푸르나 산맥 지역주민들에게 신성시 여겨져 일반인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마차푸차르 전경.


10월 22일 새벽, 해발 4130m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병풍처럼 우리를 둘러싼 설산(雪山) 사이로 태양이 떠올랐다. 웅장했다. 하지만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산병으로 두통이 온 탓일까. 일행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이걸 보러 여기까지 온 건가."



◇'지속가능한 관광'으로 자연 속 조화 지키려=우리는 '지속가능한 관광' 코스를 직접 체험해보기 위해 10월 16일부터 열흘 동안 안나푸르나를 등반했다.

네팔 북서쪽의 안나푸르나 지역은 해발 6000~7000m 고도의 히말라야 산맥이 보여주는 웅장함이 매력적인 지역이다. 매년 4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안나푸르나에 관광객들이 늘면서 지역주민들의 소득은 높아졌다. 그러나 자연은 망가졌다.
↑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br>
가는 길의 그래피티.↑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
가는 길의 그래피티.
1992년, 현지사람들은 자연도 지키고 지역민의 삶의 질도 높이기 위해 안나푸르나 보전구역 프로젝트(ACAP: Annapurna Conservation Area Project )를 시작했다. 같은 이름의 비영리단체 'ACAP'도 설립됐다.

ACAP 덕분에 지역주민은 지역 환경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게 되었다. 입장료 등 관광수입은 지역주민 전체를 위해 쓰인다. 일회용품 사용제한, 산장 간 경쟁금지 같은 원칙들은 수많은 관광객 발길 속에서도 안나푸르나의 절경을 지키게 해줬다.

'결코 끝나지 않는 평화와 행복(Never Ending Peace And Love).'


우리는 네팔 영문 표기(NEPAL)를 따서 적은 이 그래피티를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가에서 찾아내고는 "지속가능한 관광의 정신과 딱 맞다"며 왁자지껄 떠들었다. 그 때 인근 롯지(임시거처로 쓰는 오두막집)의 주인이 다가와 말했다.

"이 곳에 사랑은 있을지 몰라도 평화는 없어요."

우리는 곧 그의 말에 마음으로 공감하게 되었다. 등반 내내 우리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ACAP이 지켜낸 경치 좋은 산세가 아니라, 우리 옆을 끊임 없이 지나가던 포터(짐꾼)들의 존재였다.

안나푸르나는 산행 기간이 최소 10일이라 짐이 일반 등산의 2~3배 많다. 따라서 산악인들은 현지인을 포터로 고용한다.

↑안나푸르나의 짐꾼.↑안나푸르나의 짐꾼.
◇등산화도 없이 험한 산 오르는 짐꾼들=살집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앙상한 팔과 다리로, 포터들은 30~40킬로그램이 족히 넘을 듯한 짐을 용케 지고 산을 올랐다. 어떤 이는 캠핑을 즐기는 관광객의 텐트를 대신 짊어지고 있었다. 또 어떤 이는 한 짐 가득 재활용 쓰레기를 짊어졌다.

등산화를 신은 포터는 없었다. 그나마 젊은 포터들이 신은 스니커즈는 좋은 축에 드는 신발이었다. 대부분의 포터에겐 얇고 낡은 슬리퍼 한 짝이 가진 장비의 전부였다.

눈이 마주치면 그들은 웃는 얼굴로 먼저 '나마스테' 하고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나마스테' 하고 답하는 우리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묵묵히 길만 보고 걷는 포터들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그들의 등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보다도 체념한 듯한 그들의 무표정이 더 가슴 아팠다.

우리는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면서 설산에 쌓인 눈보다 무거운 네팔인의 고단한 일상을 들여다보게 됐다.

해발 3700미터의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M.B.C)에 도착한 날, 가이드인 니르말라(24)씨가 배를 움켜잡으며 주저앉았다. 그는 안나푸르나 등반을 위해 우리가 사회적 여행사 '스리시스터즈'에서 고용한 가이드였다.

우리가 설사약을 건넸지만, 니르말라씨의 설사는 멈추지 않았다. 나중엔 구토까지 했다. 아마 포터들과 함께 값싼, 그래서 약간 비위생적으로 보였던 밥을 사먹어서 식중독에 걸린 듯했다. 공연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니르말라씨를 몇시간만에 겨우 재우고 산장 한켠 식당에 자리를 잡았는데, 우리는 거기서 공교롭게도 한국인 산악팀을 만났다. 그런데 산악팀원들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동행한 포터의 손과 발이 동상에 걸려 급하게 하산했다는 것이다.

두 손과 발을 두꺼운 장갑과 붕대로 동여맨 젊은 포터는 고통을 참기 힘겨운지 계속 독한 보드카를 주문했다. 산악인이야 좋아서 산에 간다지만, 포터는 무엇 때문에 저런 아픔을 겪어야 할까.

↑안나푸르나 지역 어린이들.↑안나푸르나 지역 어린이들.
◇17~18세부터 몸피 2~3배 짐 지기 시작=포터들은 처음 짐을 이기 시작하는 나이는 보통 17~18세다. 그때부터 몸이 포터 일을 감당 할 수 없는 30~40년 후까지 짐을 진다.

20~40kg의 짐을 하루 종일 지는 대가로 그들이 받는 일당은 400루피, 우리 돈 5600원 정도. 이 돈으로 음식은 물론 숙박도 해결해야 한다.

포터와 가이드로 일한지 8년이 됐다는 마나(36)씨는 "포터들의 한끼 식사비는 50루피 정도지만 그 돈도 아끼려 보통 아침과 저녁 하루 2끼만을 먹는다"고 말했다. 숙박은 보통 관광객들이 식사를 다 끝내고 돌아간 식당 한 켠을 빌려 공짜로 해결한다.

"정부에서 정한 기준 임금은 하루 200~300루피 정도입니다. 다행히 관광업계에서는 이보다 높은 돈(400루피)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 또한 충분치는 않아요. 관광업노동자조합(UNITRAV)에서 임금 현실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조합의 힘이 강하지 않아 역부족인 상태죠."

우리 희망대장정팀이 세명의 식대로 지불하던 돈은 보통 1000루피였다. 우리의 한끼 식대는 포터 한 명이 이틀반 동안 짐을 지고 산을 올라야 벌 수 있는 돈이었다.

사회적 여행사 '스리시스터즈'의 안내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포터에게는 등 뒤의 무거운 짐보다 생활의 경제적인 짐이 더 무겁습니다. 불편함을 떨쳐버리세요.' 하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열흘 간 등반기간 내내 포터를 고용하지 않았다. '자신의 짐을 남에게 지운다는 것.' 한국에서 등산할 땐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더구나 우리는 나름대로 빈곤을 고민하겠다고 나선 학생들이 아닌가.

한쪽에 누워 있는 우리의 가이드. 다른 쪽엔 고통에 안절부절 못하는 포터. 어두운 산장의 밤, 우리의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주인이 존중 받고 손님이 환대 받는 관광=몸이 아픈 니르말라와 동상에 걸린 포터를 내려보내고, 우리는 천천히 우리의 짐을 짊어지고 산행을 계속 했다. 하산 길에 들른 촘롱 마을은 우리들의 시골 고향처럼 따뜻했다. 때는 마침 한국의 추석과 같은 네팔의 명절 기간이었다.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 네팔 전통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리썅피리리, 리썅피리리.' 한국의 단체 관관객을 위한 공연 소리였다.

소박하게 시작되던 노래는 어느새 흥겨운 춤판으로 이어졌다. 술에 취해 몸을 흔드는 관광객들의 모습과 마을 발전을 위해 기부금을 걷으러 다니는 마을주민들의 모습이 교차했다.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전통 문화를 공연해주는 광경은 제3세계 관광지 어디에서나 보기 쉬운 풍경이다. 어쩌면 기본적인 비즈니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10월 21일부터 일주일간은 네팔의 최대 명절 기간이었다. 자기네 명절에까지 돈을 벌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주민들의 모습을 봤을 때, 우리는 무엇이 지속가능한 발전인지 혼란스러웠다.

10일간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면서 본 산장주인들의 깔끔한 모습과 포터들의 헐벗은 발은 극명한 대비를 이뤘다. 이들의 삶의 배경은 모두 히말라야의 설산이었지만, 이들의 경제적 배경은 극단적으로 달랐다.

관광은 산업이다. 산업은 서비스와 재화를 생산해야 한다. 하지만 생산의 목적이 과연 돈이 전부일까? 관광객들은 손님으로서 환영 받고 지역주민들은 주인으로서 존중 받는 관광. 이러한 원래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지속가능한 관광'이 아닐까?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에 선 주세운,윤여정, 김이경(왼쪽 사진의 맨왼쪽부터) 등 희망대장정팀. 산 아래는 여름, 산 정상은 겨울. 안나푸르나엔 4계절이 공존하고 있었다.↑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로 가는 길에 선 주세운,윤여정, 김이경(왼쪽 사진의 맨왼쪽부터) 등 희망대장정팀. 산 아래는 여름, 산 정상은 겨울. 안나푸르나엔 4계절이 공존하고 있었다.
◇희망대장정팀은?
△김이경(22, 한양대 경제금융 04학번, ODA와치 단원, 한국공정무역연합 자원활동가)
△윤여정(22, 아주대 경영 04학번, 지구촌대학생연합회 전 회장,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기획단)
△주세운(22, 서울대 지구환경공학 04학번, 서울대 CSR연구회, 한국공정무역연합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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