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증시에 기름 붓는 페트로차이나

머니투데이 김능현 기자 2007.11.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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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년간 중국 증시는 '사상 최고'라는 말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다. 전세계 증시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라는 복병에 발목이 잡혀 주춤한 사이 중국 증시는 나홀로 상승하며 사상 최고 행진을 이어갔다.

증시 규모도 날로 커지고 있다. 중국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전세계 다른 증시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으며 거래량도 여타 아시아 국가들을 웃돈다.



중국 본토와 해외 증시에 상장된 중국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 증시의 시가총액을 넘어섰다.

중국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차이나가 상장 첫날인 5일 160% 급등하며 시총기준 세계 1위 기업으로 등극한 것은 중국 자본주의 역사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대사건이다.



페트로차이나의 시가총액은 세계 증시 역사상 최초로 1조달러를 넘어섰다. 2위 엑손모빌(4877억달러)의 두배가 넘는 규모다.

현재 세계 10대 기업(시총기준) 중 4개가 중국기업이다. 페트로차이나가 압도적인 1위이며 차이나모바일, 중국공상은행, 시노펙이 10위권안에 이름을 올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페트로차이나의 1위 등극을 계기로 중국 증시의 버블 여부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자세히 소개했다.


FT는 중국 내에서조차 페트로차이나의 주가가 펀더멘털을 벗어났다는 회의론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의 자본통제, 과잉유동성 등이 유발한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제 페트로차이나의 연간 순이익은 경쟁사인 엑손모빌의 절반에 불과하다. 일부에선 유가상승에 힘입어 페트로차이나의 순이익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으나 이는 전세계 석유기업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재료다.



현재 페트로차이나의 예상 PER(주가/예상 주당 순이익)는 54로 전세계 석유기업 예상 PER의 3배에 달한다.

상하이 소재 에버브라이트 증권 애널리스트 장 리양은 "페트로차이나 주가가 급등한 정당한 이유를 좀처럼 찾기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페트로차이나와 달리 높은 주가가 당연시되는 기업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중국 최대 이동통신업체인 차이나모바일이다. 차이나모바일의 시가총액은 3927억달러로 세계 4위다. 영국 보다폰의 2배에 육박한다.



총 가입자수 3억5000만명, 올해 가입자수 4800만명 등 중국 경제성장의 최대 수혜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추가 상승 여지가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 최대 상업은행인 공상은행(ICBC)도 마찬가지. 시총 3643억달러로 세계 5위인 ICBC는 중국 전역에 1만7000개의 지점을 갖고 있는 대형은행이다. 올해 상반기 순이익이 전년대비 61% 증가하는 등 경제성장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세계 최대 금융그룹인 씨티은행이 대규모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자산을 상각, 투자자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전문가들은 2010쯤이면 ICBC의 순이익 규모가 씨티그룹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ICBC의 순이익 규모는 씨티그룹의 절반 수준이다.

HSBC 아시아 주식 전략가 게리 에반스는 "중국인들의 소비가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차이나모바일, ICBC 등 내수와 직결된 기업들의 주가는 향후 몇년간 상승 추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기업들의 실적이 부풀려졌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특히 금융회사들이 이러한 비판의 주 표적이 되고 있다.



ICBC 등 중국 은행들의 부실 채권 규모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 있다. 만일 중국의 경기가 둔화될 경우 이들 부실 채권은 중국경제에 금융위기를 몰고 올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비관론자들이 내세우는 또 다른 중요한 근거는 상하이 증시에 상장된 중국 국영기업들의 유통주식수가 과도하게 적다는 점이다. 특히 페트로차이나의 유통주식수는 전체 주식의 2.2%에 불과하다.

투자자들이 기업실적과 관계없이 유통주식수가 적은 기업들을 집중 매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이다.



FT는 1980년대 시총기준 세계 1위에 등극했던 일본 공업은행의 주가가 일본의 경제 버블이 꺼지면서 급락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공업은행은 엄청난 규모의 부실 채권을 떠안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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