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판 '골드미스' 세자매 이야기

포카라(네팔)=희망대장정,정리=이경숙 기자 2007.11.0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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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시아, 빈곤을 넘어]<5-1>네팔의 사회적기업가 러키, 디키, 니키

편집자주 2달러, 우리돈으로 약 1800원. 이 돈으로 아시아 인구 중 9억명이 하루를 삽니다. 21세기 이후 아시아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6.3%로 다른 지역의 2배에 가깝습니다. 아시아는 과연 빈곤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아 김이경, 윤여정, 주세운 등 세 젊은이로 구성된 '희망대장정'팀이 지난 9월, 아시아 최빈국의 빈곤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80일 동안 이어질 이들의 희망대장정을 머니투데이가 전해드립니다.

↑네팔 빈곤여성을 위한 사회적 여행사를 차린 세자매 사업가. 왼쪽부터 러키, 디키, 니키 치헤트리.↑네팔 빈곤여성을 위한 사회적 여행사를 차린 세자매 사업가. 왼쪽부터 러키, 디키, 니키 치헤트리.


네팔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4년 기준으로 289달러, 국민 다수가 하루 1달러 미만의 돈으로 산다. 이런 네팔에서 여자가 일당 10달러를 버는 직장은 흔한 게 아니다.

네팔 포카라의 체트리(Chhetri)씨네 세 자매 러키(44), 디키(40), 니키(38)는 여자들을 위한, 여자들에 의한, 여자들의 일자리를 만들었다.



'스리시스터즈(www.3sistersadventure.com)'란 여행업체를 차린 이들은 사업가로도 성공했다. 미혼의 몸으로 돈도 벌고 사회적 명망을 얻었으니 네팔판 '골드미스'가 따로 없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성 여행자들의 입을 타고 퍼졌다. 1999년엔 미국 방송사 CNN이 찾아왔다. 그 후 영국 BBC, 일본 NHK도 다녀갔다. 유엔(UN)회의에선 여성과 빈곤, 관광에 대한 주제로 이들이 언급됐다. 2004년엔 세계적 사회적기업육성기관인 '아쇼카재단'의 사회적 기업가로 선정됐다.



하지만 우리가 포카라에서 머문 한 숙소의 주인, 라젠드라씨는 "스리시스터즈를 사회적 기업이라고 칭하지만 그들이 하는 것은 비즈니스일 뿐"이라고 말했다. 반신반의하며 우리는 '스리시스터즈'가 운영하는 방문자숙소로 향했다.

◇'산 속 성희롱' 방지 위해 여자안내자 양성

시끄러운 포카라 시내를 벗어나 택시로 5분 정도 달려가니 탁 트인 들판과 호수, 그 너머의 히말라야 산맥이 보였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했다. 한창 경치에 취해 있을 때 택시는 자연 속에 덩그렇게 위치한 스리시스터즈 게스트 하우스 앞에 멈춰 섰다.
↑ 위부터 '스리시스터즈'의 <br>
방문자 숙소, EWN의 교육장, <br>
EWN어린이보호센터.↑ 위부터 '스리시스터즈'의
방문자 숙소, EWN의 교육장,
EWN어린이보호센터.
스리시스터즈의 둘째 디키(Dicky)씨는 방문자 숙소 앞에서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한 그는 "너무 많은 언론매체에서 취재를 와 이제는 귀찮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의 솔직함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증이 생겼다. 어떤 특별함이 있기에 선진국 방송국들이 앞다투어 취재를 왔을까?

원래 1994년 '스리시스터즈'는 식당으로 창업됐다. 포카라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트래킹 출발지로도 유명한 곳이어서 해외에서 많은 여행자들이 몰려왔다.

그런데 '스리시스터즈'에 머물던 여행객들이 트레킹 중간에 남자안내자와 문제가 생겨 울며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어떤 여자 여행객은 남자안내자한테 성희롱을 당했다고 했어요. 한 홍콩 여자는 남자안내자와 트레킹을 했는데 그가 "중국 아내를 갖고 싶다"며 "소 10마리를 줄 테니 네 번째 부인으로 시집와 달라"고 프러포즈를 했다더군요."

세 자매는 여자 여행객을 위한 여자 안내자를 제공하는 사업을 구상했다. '네팔 여성에게 힘 실어주기'라는 뜻의 비영리기구 'EWN(Empowering the Women of Nepal)'는 1999년 이렇게 설립됐다.

◇양성평등 일구는 여자들의 기업

EWN은 농촌여성들에게 무료로 트레킹(도보여행) 안내자 교육을 한달 동안 제공한다. 이땐 역사, 문화, 리더십, 영어회화 등 기본 소양에 대한 교육도 실시한다. 본격적인 안내자로 활동할 때까지 훈련 후 6개월간은 숙식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여기서 양성된 여성들은 여성관광객을 위한 스리시스터즈의 안내자로 활동한다. 인기는 높을 수밖에 없다. 지난 9월 진행된 교육과정의 정원은 48명이었는데, 신청자 500명이 몰려왔다.

지난해 4월부터 EWN는 히말라야 산속에서 아동노동으로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어린이를 구출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30명의 아이가 머물고 있는 EWN 어린이보호센터는 네팔의 기본 교육인 10학년을 마칠 수 있도록 돕는다. 스리시스터즈 안내자가 아동노동을 하고 있는 어린이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

세 자매 활동은 이제 포카라를 넘어서고 있다. 이들은 2005년부터 네팔 서쪽 지역 코르날리에 공동체 개발을 위한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지리교사, 한국대사관 직원으로도 일했던 맏언니, 러키(Lucky)씨는 자신의 오래된 신념을 들려줬다.

"젊은 시절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네팔 서부지역 농촌을 방문했어요. 그 때 열악한 환경 속에서 남성들에게 차별 받으며 사는 농촌여성들의 비참한 삶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세 자매는 아버지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모든 여성들은 평등하다"는 교육을 받았다. 그 때문에 '여자 안내자 양성'이라는 일은 여성들을 위해 무언가 기여하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

◇네팔에서 여자끼리 사업한다는 건...

하지만 남성 중심 사회인 네팔에서 여자들끼지 사업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래선이 여자와 거래하는 것을 꺼려해서 오빠들 명의로 대신 계약하기도 했다. 동종 업계 남자들이 이들을 시기해 사무실을 찾아와 난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사업 초기를 회상하는 막내 니키(Nicky씨)의 얼굴에 곤란한 빛이 돌았다.

"젊은 여자들을 불러 모아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지역 공무원이 찾아와서 성 사업(sexual business)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추궁을 하기도 했죠. 근처 호스텔 업자들은 우리 호스텔에서 자다 죽은 사람이 있다는 유언비어까지 퍼뜨렸어요."

역경은 확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러키씨는 "스리시스터즈와 EWN은 포카라 지역 여성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트레킹을 통해 삶을 바꾸고 싶어하는 모든 여성들의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나 쿤와(26, 맨 오른쪽)씨와 나다라이(36)<br>
씨는 스리시스터즈 덕분에 만나 결혼했다. <br>
두사람은 지금 스리시스터즈 식당<br>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가운데는 딸 <br>
디쉬야 라이(2).마나 쿤와(26, 맨 오른쪽)씨와 나다라이(36)
씨는 스리시스터즈 덕분에 만나 결혼했다.
두사람은 지금 스리시스터즈 식당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가운데는 딸
디쉬야 라이(2).
"여자들은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숨겨진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발견하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저희의 임무입니다."

디키씨는 "트레킹은 건강과 미래, 두 가지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수입도 네팔 다른 직업보다 2배 이상 많다.

"트레킹은 가을, 봄 시즌으로 나뉘는데 반년 동안 8000루피(125달러)를 벌어요. 또 외국의 여자여행자들과 만나고 교류하면서 다양한 문화도 쌓고 영어도 익히게 되죠. 트레킹 안내자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 자신의 삶을 바꾸고 계발할 기회가 열려 있어요."

러키씨는 우리의 희망대장정 일정을 듣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저도 젊었을 때 빈곤한 지역을 방문하고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 빈곤은 단순히 돈을 준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여러분들의 여행은 진정한 공부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세계 빈곤층 70%는 여성

1달러 미만의 돈으로 하루를 사는 절대 빈곤층은 전 세계에 13억 명이 있다. 그 중 70%는 여성이다. 여성은 세계 노동의 66%를 맡지만, 전체 임금의 5% 미만을 가져간다.

남성 중심 사회 네팔에서 세 자매가 하는 일이 사회적 기업인지, 그냥 '비즈니스'인지 구분하는 건 중요해보이지 않았다. 세 자매는 세계인 공동의 문제, 즉 여성 빈곤이라는 문제를 해소하는 데에 이미 큰 힘을 보태고 있었다.

우리는 늦은 밤 세 자매와 긴 대화를 마치고 가족 같이 포근한 분위기로 우리를 반겨주는 스리시스터즈 숙소로 향했다.
'스리시스터즈' 정면에 보이는 들판과 호수, 희말라야 산자락.'스리시스터즈' 정면에 보이는 들판과 호수, 희말라야 산자락.
◇희망대장정팀은?
△김이경(22, 한양대 경제금융 04학번, ODA와치 단원, 한국공정무역연합 자원활동가)
△윤여정(22, 아주대 경영 04학번, 지구촌대학생연합회 전 회장,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기획단)
△주세운(22, 서울대 지구환경공학 04학번, 서울대 CSR연구회, 한국공정무역연합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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