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구걸하던 소년의 '공정무역' 성공기

카트만두(네팔)=희망대장정 2007.11.0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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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시아, 빈곤을 넘어]<5-2>네팔의 사회적 기업가, 딜리 투라드하르

편집자주 2달러, 우리돈으로 약 1800원. 이 돈으로 아시아 인구 중 9억명이 하루를 삽니다. 21세기 이후 아시아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6.3%로 다른 지역의 2배에 가깝습니다. 아시아는 과연 빈곤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아 김이경, 윤여정, 주세운 등 세 젊은이로 구성된 '희망대장정'팀이 지난 9월, 아시아 최빈국의 빈곤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80일 동안 이어질 이들의 희망대장정을 머니투데이가 전해드립니다.

↑딜리 투라드하르씨.↑딜리 투라드하르씨.


"제 꿈은 세계여행을 하는 것입니다."

한 소년이 꿈을 이야기했을 때, 친구들은 크게 웃었다. "불가능한 꿈은 꾸지도 말라며"고 소리쳤다. 소년은 학비가 없어 교장한테 수업을 구걸하고 있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소년은 무역회사 2개를 경영하는 사업가가 되어 세계인을 친구 삼아 유럽, 미국, 아시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는 38세의 사업가가 된 소년, 딜리 투라드하르(Dilli Tuladhar)씨를 10월 9일, 네팔 카트만두의 리투얼 운송(Ritual Freight P.Ltd) 사무실에서 만났다.

◇'생산자 자녀가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공정무역



그의 사무실엔 수십개의 감사패와 상장이 걸려 있었다. 유럽연합(EU)이 선정한 1999년의 최고모직 수출회사, 2002년의 최고직물 수출회사, 국제공정무역연맹(IFAT)과 공정무역그룹(FTG) 네팔이 수여한 감사패.

그의 사무실은 비록 여행자 거리인 타멜의 한 낡은 건물 2층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의 위상은 초라해보이지 않았다.

그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글로벌카고'라는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우연히 '사나하스타칼라'라는 공정무역 회사를 알게 됐다. 이것이 그가 공정무역에 투신하게 된 계기가 될 줄 당시엔 자신도 몰랐다.
↑'리투얼 운송' 사무실 앞에 선<br>
희망대장정팀의 윤여정씨(맨아래 오른쪽).↑'리투얼 운송' 사무실 앞에 선
희망대장정팀의 윤여정씨(맨아래 오른쪽).
"공정무역 조건 중 하나가 '생산자들에게 아이들을 교육받을 수 있을 만큼 정당한 가격을 보장해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딜리씨는 9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전기 수리 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았다. 아버지는 소년 딜리가 이 학교에 가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갔다.

딜리는 공부가 하고 싶어 창문을 열고 학교로 뛰어가 교장께 수업을 받을 수 있게, 시험을 치룰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했다. 그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상위권을 지키며 악착 같이 공부했다. 대학과정도 마쳤다.

이렇게 자란 그에게 생산자 자녀까지 고려하는 공정무역의 조건은 남다르게 다가왔다. 그는 근처 공정무역 커피농장에서 매주 토요일 자원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정무역 커피 수요자가 없자 그 농장은 생산을 멈추고 커피 나무를 베어내야 했다. 그는 커피 생산을 지속하기 위한 방안을 직접 찾아 나섰다.

'사나하스타칼라'를 통해 그는 일본의 공정무역 단체인 '네팔리 바자로'를 소개 받았다. 그는 자원봉사로 공정무역 커피를 수출을 도왔다.

◇자원봉사하다가 해고...'새옹지마'

그가 다니던 회사 사장은 그에게 '자원봉사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회사 일에만 전념하지 않는 모습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1994년, 결국 그는 해고 당했다.

친구들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1995년 6월 타멜 거리에 방 2칸을 빌렸다. 직원 1명도 채용했다. 이제 그는 무역회사 '리투얼'의 사장이자 선적회사 원월드(Oneworld)의 대표가 됐다.

"제 자신이 가난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가난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삶의 질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수단이 됩니다. 그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전 공정무역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공정무역 때문에 해고 당했지만 그의 직원들, 그의 생산자들은 덕분에 착한 무역회사 하나를 갖게 됐다. 리투얼은 직원들이 오전에 공부하고 오후에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고졸 직원의 평균 임금은 150달러다.
↑일본 네팔리바자로에서 파는 공정무역 커피.↑일본 네팔리바자로에서 파는 공정무역 커피.
또, 리투얼은 공정무역 생산자들이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한다. 수출장부조차 써본 적 없는 생산자한테 중간상인 없이 거래하도록 계약서 작성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중간상인한테 100루피를 받는 제품을 해외에서 직접 팔면 500루피를 받을 수 있다.

리투얼은 공정무역 제품에는 수수료도 덜 받는다. 일반상품의 수수료는 7%인 반면 공정무역 상품의 수수료는 5%다. 현재 리투얼은 3 대 7 정도로 일반상품보다 공정무역 상품을 더 많이 거래한다.

"10여년 전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이 낮았을 때엔 우리 회사도 일반 상품을 더 많이 취급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질 좋고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공정무역 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현재 리투얼은 카트만두에 있는 공정무역 단체의 모든 제품을 취급하고 있다. 수출지는 한국을 포함해 일본, 이탈리아, 미국 등 전 세계로 넓어졌다.

◇"교육받은 한 사람이 사회를 바꿉니다"

리투얼은 IFAT 멤버가 아니다. 공정무역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사업이 있다는 이유로 인증이 거부됐다.

하지만 딜리씨는 여전히 공정무역을 열렬히 지원하고 있다. 그는 공정무역 심포지움, 포럼이 개최될 때마다 행사를 후원한다. 2년에 한번 열리는 IFAT 컨퍼런스에 네팔의 공정무역 단체 활동가가 참여할 수 있도록 1명의 비행기표를 제공한다.

"저는 돈을 버는 비지니스맨이므로, 자본을 사회에 유용하게 쓰는 방법을 찾았어요. 공정무역 행사 지원이 그것이죠. 행사참여자들이 공정무역 확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세계의 흐름을 파악하고 많은 정보를 접하는 것 자체가 교육이니까요."

네팔의 불안한 정치상황 속에서도 딜리씨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려움에 직면했어도 해결하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다면 기회는 찾아옵니다. 네팔 정치와 경제가 어렵다고 하여 네팔을 벗어나려고만 애를 쓰면 발전 없이 후퇴만 있을 뿐입니다. 저는 네팔에서 네팔인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약 3시간의 인터뷰를 끝낸 후 딜리는 저녁식사에 우리를 초대했다. 네팔 전통 음식인 '달밧'에 곁들어진 네팔 춤과 장단 속에 밤은 깊어갔다.

식사가 끝난 밤 10시. 나머지 업무를 보기 위해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딜리를 보며 우리는 공정무역과 네팔의 희망을 엿보았다.
↑희망대장정팀은 네팔 카트만두의 한 식당에서 딜리씨와 함께 전통음식 '달밧'을 먹으며 전통춤과 음악을 즐겼다. ↑희망대장정팀은 네팔 카트만두의 한 식당에서 딜리씨와 함께 전통음식 '달밧'을 먹으며 전통춤과 음악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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