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rue Jean- pierre Sauvage, L-2514 Luxembourg
1991년 1월 우리 가족이 위 주소에 있는 아파트에 입주하였을 당시 그 단지 내에는 한국인은 물론 동양인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온 동네사람들의 관심이 우리에게 쏠렸고 무언가 5초 이상만 쳐다보고 있으면 누군가 나타나 우리에게 그 내용을 설명해 주려고 몰려들었다.
버스정류장에는 요일마다 다른 버스 도착시간이 적혀 있었고 버스들은 적힌 시간보다 조금 늦은 경우는 있지만 절대로 미리 출발하지는 않았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단지 내 유일한 작은 상점이 있어 주말 이른 아침에는 남자들이 기다란 바게트 빵을 사려고 줄을 서고, 오후에는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대형 마트 Cactus에서 부인들이 쇼핑을 하는 동안 남자들은 일주일 치로는 지나쳐 보일 정도로 많은 와인을 카트에 싣고, 귀퉁이 선술집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맥주를 마시며 줄이어 서 있었다.
유럽현지은행을 설립하러 간 우리 팀에겐 당시 사무실이 없어 부동산 중개업소에 조그만 공간을 얻어 초창기 업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가족에겐 혹시 길을 잃어 집을 찾지 못할까 하여 조그만 메모지에 집 주소 하나를 달랑 적어주고, 나는 사방을 헤매고 다녔다. 집에는 아직 전화도 연결되지 않았고, 휴대폰은 당연히 없었다.
우리에게는 보잘 것 없지만 평생 처음 맛본 음식에 감동한 삐에르씨는 빈 접시에 와인을 함께 보내주셨고, 그 와인은 평소 너무 고가여서 엄두를 내지 못한 것들이었다. 만드는 과정에 자극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한국음식을 모른 체 할 수 없어 그 때마다 보낸 음식들은 더 큰 부담으로 되돌아 왔다.
어느 날 나는 작정을 하고 삐에르씨를 만나 너무 과분한 답례를 그만 멈춰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렸다. “나는 그 독특하고 훌륭한 음식에 비해 절대로 지나친 답례를 하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네.” 하고 손사래를 친 그는 지하창고로 -아파트지만 집마다 지하창고가 배정되어 있음- 나를 안내했다. 꺄브(창고) 문을 연 순간 바닥부터 천정까지 가득 찬 와인 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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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래쪽 깨끗한 병들은 최근 내가 구입한 것들이고, 저 위쪽 먼지를 뒤집어 쓴 것들은 아버지가 남기신 와인이지 할아버지 와인도 남았는지 글쎄, 나는 아버지가 남기신 와인을 마시고 최근 빈티지로 채워 놓지 그러니 감사 인사를 하려면 우리 아버지께 하시게 ”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양 손바닥을 펴 보이는 제스처를 보였다.
나는 어떻게 그 대단한 빈티지의 와인을 그렇게 쉽게 이웃과 나눌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고 그날 이후 장기 보관이 가능한 좋은 빈티지의 와인은 일부를 남겨 지하꺄브에 보관하고 있다.
언젠가 나는 창고에 메모를 남길 예정이다. “아들아 이 와인들을 너무 아끼지 말고 좋은 것일수록 이웃과 편하게 나누어라, 그것들은 앞으로 만날 이웃을 위해 네가 대신 보관해 왔을 뿐이다.”
이웃, 친구,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유롭게 담소를 나눌 수 있고, 처음 만나는 사람의 닫힌 마음을 편하게 열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도구가 바로 와인 함께 나누기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