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지난 10년 과연 잃어버렸나

머니투데이 정희경 금융부장 2007.10.2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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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지난 10년 과연 잃어버렸나


금융시장의 궤적을 10년, 20년 단위로 되짚어보면 크고 작은 위기가 되풀이됐다. 마치 호황은 위기를 먹고 자라는 듯 호시절은 급박한 위험을 타고 올랐을 때 찾아왔다.
 
'블랙먼데이'가 만 20년이 된 지난 19일(금요일). 뉴욕증시는 또한차례 악몽에 시달렸다.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1만4000선을 웃돌던 블루칩(다우) 지수가 월가를 공포에 빠뜨린 20년 전 낙폭의 3분의2 정도 떨어지는 등 주요 지수들이 급락한 것이다. 다행히 급락세는 다음 거래일인 먼데이에 멈췄고, '블랙데이'에 대한 우려도 진정됐다.

하지만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해소되지 않은데다 배럴당 100달러를 위협하는 고유가 행진, 잇단 경고음이 켜진 중국경제의 과열위험 등이 지속돼 또한차례 위기가 닥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기는 반복되지만 늘 같은 양상은 아니었다. 최근 증시 급락만 보더라도 20년 전과 비교하면 불안요인이 주식이 아니라 채권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중앙은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이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격상된 당시에 비해 두텁지 않다.

이는 시장 참가자들이 위기에서 배우는 탓이다. 단적으로 미국투자자들이 이번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우려에도 FRB가 결국 구제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또한 경제는 여전히 탄탄하다는 낙관에서 주식을 산 데는 학습효과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를 극복해가는 것은 20년 전 체득한 교훈(FRB의 개입)이 힘이 됐다.



사실 지난 한 주간 다우지수는 '큰 골'을 만들어 냈지만 5년치의 경우 8000선에서 1만4000선까지 '잔잔하게' 오르는 모습이다. 그린스펀이 최근 회고록('격동의 시대')에서 "역경에 직면해도 인류가 견디면서 진전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적응은 우리의 천성이다"라고 언급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국이 호된 외환위기를 겪은 지도 만 10년이 됐다. 그 사이 금융시장에선 언론의 표현대로 '작은 대란'이 계속됐지만 하드웨어적 개혁과 투자자들의 학습으로 내실이 탄탄해졌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그린스펀도 "10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불안한 빚쟁이에서 첨단 엔진으로 변모했다"고 인정했다.

외환보유액이 10년새 10배로 커져 당시처럼 외환유동성 위기로 국가부도가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졌다. 금융회사에 대한 감독 역시 엄격해져 단기 외채를 빌려 해외에서 무분별하게 장기로 투자할 여지도 없다. 나아가 선진국으로부터 경제패권을 넘겨받는 아시아의 한 주역이 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경계할 대목은 위기도 진화한다는 점이다. 다단계 유동화를 거친 파생상품이 속출하면서 한 회사의 부주의가 시장 전반을 뒤흔들 위험은 커졌다. 중앙은행의 소방수 역할이 점차 제한되는 것도 진화하는 위기의 이면이다. '값진' 10년을 보낸 한국이 소프트웨어적 혁신을 요구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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