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유 회장의 '脫은행 실험'

머니투데이 진상현 기자 2007.10.25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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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중심 지주사 틀 깨는 시도 잇따라

김승유 회장의 '脫은행 실험'


하나금융지주가 은행 중심 금융지주회사의 틀을 깨는 시도를 하고 있다.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에 은행 출신이 아닌 외부전문가를 영입하고, 은행에서 계열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상품을 팔거나 은행의 투자은행(IB)부문을 떼내 IB전문 증권계열사로 이관한 것 등이 사례다. 이는 김승유 회장(사진)의 '탈 은행 실험'으로도 읽힌다.

◇발상의 전환 "빅팟"=지난 19일 하나금융지주의 3/4분기 기업설명회(IR)에서 만난 하나은행 고위관계자는 '빅팟통장'의 반응을 묻자 "초기에 주목받는 데 성공했다. 다른 은행들의 원망이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고금리 보통예금은 지난 8월 기업은행을 시작으로 잇따라 출시됐지만 하나은행의 '빅팟통장'은 성격이 다르다.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의 상품이 증권사 CMA로 옮겨가는 자금을 붙들기 위한 것인 반면 '빅팟통장'은 은행을 이탈하는 자금을 계열 증권사 CMA로 유도하는 구조다. 은행에서 CMA상품을 팔도록 했으니 은행 보통예금의 이탈을 부추긴다는 '원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 지난 23일 현재 이 상품에 들어온 자금 6100억원 중 4500억원은 계열 하나대투증권의 CMA로 흘러갔다. 일정 금액 이상은 연결된 CMA로 넘어가 고수익을 올리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고객을 꼭 은행이 아니라 그룹 차원에서 유지하고 흡수하는 방향으로 접근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은행 출신 아니어도 CEO"=민간이 대주주로 있는 금융지주회사인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은행 출신 CEO의 중용 여부다.



신한금융은 주요 계열사 CEO들이 모두 신한은행과 구 조흥은행 등 은행 출신이다. 반면 하나금융에는 비은행 출신이 주요 계열사 CEO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지난 6월말 ING생명과 그린화재, KB생명 3개 보험회사에서 CEO를 지낸 윤인섭씨를 하나생명 사장으로 영입했고, 지난달 4일에는 국내 1세대 IB 전문가로 꼽히는 이찬근씨를 하나IB증권 대표로 선임했다. 이 대표는 골드만삭스, JP모간 등 글로벌 IB에서 오랫동안 몸담았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장하원 소장을 포함할 경우 하나금융 주요 계열사 6곳 가운데 3곳이 은행이 아닌 외부 출신 CEO인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요 계열사 CEO 자리를 외부전문가에게 준다는 것이 조직 논리상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은행 IB, 증권사로=은행 IB부문을 떼내 IB전문 증권사를 설립한 것도 '탈 은행 실험'에 속한다. 은행과 증권을 모두 갖고 있는 금융지주사들이 IB를 발전시키는 방향은 다양하지만 하나금융의 선택이 가장 '탈 은행'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은행 입장에서 주요 성장엔진인 IB를 잃는 셈이기 때문이다.

다른 금융지주사들이 이 방식을 택하지 않는 데는 은행 자금력이나 네트워크를 원활히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는 단점도 있지만 조직논리 또한 적지 않게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차별화 왜?"=하나금융이 이처럼 차별화한 행보를 보일 수 있는 배경으로 우선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를 들 수 있다. 예컨대 은행 IB부문의 경우 우리·신한은행의 IB본부 인원이 200명에 달하는 반면 하나은행은 30명 정도로 적다. 작은 규모가 변화에는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더 중요한 축은 김승유 회장의 적극적인 변화 의지다. 은행 IB부문 분리, 비은행 CEO 중용, CMA의 은행 판매 등은 CEO의 결심이 없이는 어려운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의 실험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비은행부문의 획기적 성과는 나지 않고 은행부문의 전력 분산만 가져올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금융권 관계자는 "이런 시도가 장기적으로 하나금융을 긍정적으로 보게 만드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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