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을 때까지도 어디를 갈까 결정을 못하다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오대산이었습니다. 월정사와 상원사, 그리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진부에서 빠져나와 월정사까지 4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전나무 길을 지나 법당에 들러 삼배를 했습니다.
상원사에 들러 다시 삼배를 올렸습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여러 번 다녀간 아내는 불사를 너무 많이 해 예전의 그 호젓하고 조용한 산사가 아니라며 자꾸 뭐라 말을 합니다.
내려오는 길에 불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삼배는 해야겠다는 마음에 중대 사자암에 들렀습니다. 그러나 법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미 사자암 법당 안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많은 불자가 예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밖에서 들여다본 법당은 휘황찬란했습니다. 금빛으로 화려하게 도금한 1000여 기 정도 될 것 같은 불상이 보는 사람을 압도했습니다. 법당 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자암 전체가 화려한 불사로 빛났습니다. 얼른 발길을 돌렸습니다.
버리고 갈 수도 없고 다시 차를 끌고 상원사에서 신작로 같은 산길을 따라 아주 천천히 홍천군 내면 명개리 쪽으로 갔습니다. 1시간쯤 가다보니 길 옆으로 미륵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보였습니다. 오대 중 하나인 북대 미륵암인데 그렇게 화려했던 중대 사자암과는 딴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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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산 북대 미륵암, 법당에는 고행상의 목불이 모셔져 있다(사진; 국립공원 오대산 홈페이지)](https://thumb.mt.co.kr/06/2007/10/2007102116014065438_1.jpg/dims/optimize/)
마침 불심이 아주 깊어 보이는 중년의 한 등산객이 암자 샘물에서 물을 길어다 부처님께 바치더군요. 그는 촛불을 켜고는 절을 하고, 불경을 외웠습니다. 아내와 저도 그 등산객을 따라 했습니다.
고개를 들어 미륵암 부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화려한 금빛 도금의 눈부신 부처님이 아니라 나무로 깎아 만든 보잘 것 없는, 몸은 마르고 얼굴은 찡그린 고행상의 부처님이었습니다. 가벼운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더이상 고행상의 부처님 앞에 있을 수가 없어 얼른 법당에서 나와 버렸습니다. 북대 미륵암 마당에서 바라본 오대산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습니다.
신정아-변양균 스캔들 덕분에 우리의 관음증은 넉넉히 충족됐지만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은 심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조계종단과 재가불자를 대표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스캔들의 조연 아닌 주역으로 등장했다는 점이 부끄럽고 충격적입니다.
조계종단이 오죽했으면 60년 전 성철 청담 자운스님 등이 주도했던 봉암사 결사정신으로 돌아가자고 다시 그 자리에 모여 차가운 가을비를 맞으면서 결의를 했을까요. 누굴 탓하겠습니까.
![▲ 오대산 서대 수정암 ,옛 강원도 산중암자의<br>
너와지붕이 그대로 남아있다.(사진; 국립공원<br>
오대산 홈페이지)](https://thumb.mt.co.kr/06/2007/10/2007102116014065438_2.jpg/dims/optimize/)
너와지붕이 그대로 남아있다.(사진; 국립공원
오대산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