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1만3700원짜리 어린 노동자들

네팔=희망대장정팀 2007.10.2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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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시아, 빈곤을 넘어]<3-1>아동노동 근절하는 네팔 러그마크 현장

편집자주 2달러, 우리돈으로 약 1800원. 이 돈으로 아시아 인구 중 9억명이 하루를 삽니다. 21세기 이후 아시아 경제성장률은 연 평균6.3%로 다른 지역의 2배에 가깝습니다. 아시아는 과연 빈곤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아 김이경, 윤여정, 주세운 등 세 젊은이로 구성된 '희망대장정'팀이 지난 9월, 아시아 최빈국의 빈곤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80일 동안 이어질 이들의 희망대장정을 머니투데이가 전해드립니다.

↑아동노동 착취의 현장에서 구출된 <br>
13세 소년 바부. ↑아동노동 착취의 현장에서 구출된
13세 소년 바부.


우리가 본 것은 희망일까, 아니면 아직도 존재하는 슬픔일까.

수줍음을 잘 타는 13세 네팔소년 바부는 한달 전 감시관에 의해 구출됐다. 소년은 삼촌을 따라 카펫 공장에서 1년 동안 일을 했다.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한 자리에 앉아서 카펫 짜는 일을 하고 900루피, 우리돈으로 약 1만3700원)을 받았다.

"처음에는 답답하고, 눈도 아프고, 어깨도 아팠는데 계속 하니깐 괜찮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어떤 아저씨가 공장에 들어 닥쳤어요. 아저씨가 저를 보더니 사장님한테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어요. 저는 영문도 모르고 멀뚱하게 있었어요."



바부와 또래친구 등 5명 중 2명은 그와 같이 함께 구출됐다. 나머지 2명은 소식이 끊겼다.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바부는 네팔러그마크재단 재활센터에서 남기로 결정했다. 공장으로부터 구출된 아동들은 여기서 먹고 자며 3년간 무료로 공부할 수 있다.



"어머니가 아파서 돌아가셨어요.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공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는지 물었다. 그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가끔씩 그때 같이 구출되지 못한 친구들이 생각난다"며 표정이 어두워지는 그 소년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네팔러그마크재단의 재활센터에서 <br>
시험을 치고 있는 아이. ↑네팔러그마크재단의 재활센터에서
시험을 치고 있는 아이.
◇네팔 아동 15만명, 카펫산업 종사= 네팔의 카펫 산업은 지난 10여 년간 내전으로 피폐해진 네팔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제조산업이다. 현재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만 1000개가 넘는 카펫 공장들이 있다.


그런데 네팔의 카펫 산업은 또한 아동노동 착취산업으로도 악명이 높다. 인도의 남아시아 아동노동 반대연대 (the South Asian Coalition on Child Servitude)의 조사에 따르면 네팔에만 15만명 이상의 아이들이 카펫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아동 노동에 대한 세계노동기구의 연령 기준은 18세 이하, 네팔의 기준은 16세 이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2년 기준으로 전 세계 5~14세 아동 2억1100만명이 경제활동을 하는데, 이중 1억1100만 명은 위험한 일에(hazardous work) 종사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또 1억2100만명의 아동은 학교에 가지 않고 있다(UNICEF 통계).

'러그마크(Rugmark)'는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우리는 '대안기업가 80인'이라는 책에서 본 '러그마크'는 카펫공장을 조사하고 상품에 인증마크를 부여하는 컨셉트가 공정무역 운동과 비슷했다.

하지만 러그마크는 '아동노동 반대'라는 메시지를 좀더 강조한다. 이 마크가 붙어 있는 카펫은 '아동노동으로 만들지 않았다(No Child Labor)'는 것을 뜻한다. 이 기구는 카펫공장에서 일하는 아동을 구출하고 재활을 돕는다. 동시에, 아동노동자가 없는 공장에 인증마크를 부여해 공장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 공장 입구에 회사 이름과 함께 <br>
러그마크가 찍힌 간판이 걸려 있다.<br>
↑한 공장 입구에 회사 이름과 함께
러그마크가 찍힌 간판이 걸려 있다.
◇아동 착취 없는 '러그마크' 공장='네팔 러그마크재단'은 지난 1995년 독일에 본부를 둔 국제 러그마크 재단과 네팔 현지 NGO의 합작으로 설립됐다. 최근까지 네팔 카펫공장의 65%인 580곳이 러그마크 인증을 받았다. 구출된 아이들은 1828명에 달한다. 러그마크 인증을 받은 네팔카펫은 미국, 유럽 등지로 약 110만개가 수출됐다.

10월 2일, 우리는 네팔러그마크의 조티라즈 네팔(Jyoti Raj Nepal, 27) 아동노동 감시관, 한국 이주노동자 출신의 여성 싸누(27)씨와 함께 러그마크 인증공장들과 탁아소를 방문했다.

맨처음 방문한 공장은 2년전까지 아동노동자를 고용했으나 러그마크의 감시와 유도로 러그마트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공장환경 평가에서는 최하위인 C등급을 받은 곳이기도 했다. 그래선지 러그마크 관계자는 실내 촬영을 금지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페인트칠이 벗겨져 때가 누렇게 낀 내벽 사이에 실타래들이 엉켜 있었다. 대낮인데도 어두운 내부에선 조명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창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떠다니는 먼지를 비췄다.

빼곡히 배열되어 있는 철제블록 사이로 여자들이 비좁게 붙어 앉아 카펫을 짜고 있었다. 몇몇 남자들은 한 쪽 마당에서 몸에 물을 끼얹으며 샤워를 하고 있었다. 여공의 어린 자녀들은 공장 내부를 뛰어다니며 재잘거렸다.

하루만 일해도 기관지에 문제가 생길 듯한 이 건물 안에서 40여명의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숙식을 해결하며 카펫을 생산한다.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3시간씩 일하면 한 달에 6000루피, 우리돈 9만1500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

1년 전부터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풀마야(17)씨는 우리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와중에도 일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많은 질문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처음에는 몸이 힘들었지만 지금은 괜찮다"는 내용뿐이었다. 뒤편에서 무심한 척 우리 쪽을 지켜보고 있던 공장매니저의 시선을 보며 그녀의 쓴 웃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작업환경 b등급을 받은 네팔의 한 <br>
러그마크 인증 공장에서 카펫을 <br>
짜고 있는 생산자.↑작업환경 b등급을 받은 네팔의 한
러그마크 인증 공장에서 카펫을
짜고 있는 생산자.
◇노동환경 나빠도 탁아소 운영=공장 건물 옆에는 바로 노동자들의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어둡고 지저분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3평 정도의 조그만 방에 4~5인 가족이 생활하고 있었다. 공장을 둘러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촬영을 불허하는 이유가 자연스레 이해됐다.

우리는 이 공장에서 걸어서 5분거리에 있는 러그마크 탁아소를 방문했다. 2001년부터 러그마크와 주변 카펫 공장주들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탁아소는 낡은 2층 건물이었다.

탁아소 건물 밖에서도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끊임 없이 들렸다. 우리가 들어서자 아이들은 두 손을 모아 이마에 갖다 되면서 '나마스테' 하고 씩씩하게 인사를 건넸다.

근처 15개 카펫 공장 노동자의 2살~6살 자녀 106명이 부모의 근로시간에 이곳에 맡겨진다. 이곳의 코디네이터는 "탁아소가 없던 때엔 아이들이 공장 내에서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공장 환경이 좋지 않아 아이들은 쉽게 다치기도 하고, 감기, 알레르기, 설사 같은 증세를 일으키기도 했어요. 지금은 부모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탁아소의 숫자가 아직 매우 부족해 대부분의 다른 공장 아이들은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한다. 단지 35개의 공장 노동자들만이 근처에 위치한 세 곳의 탁아소에 아이들을 맡기는데 이는 전체 러그마크 인증 공장 수에 비해서도 매우 작은 비율이다. 아직도 대다수의 아이들은 차가운 철제 블록 사이에서 놀고 있다.

↑인근 15개 카펫 공장의 생산자 자녀 106명이 <br>
다니고 있는 러그마크탁아소. 한 반에 10명에서 <br>
15명씩 연령별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한다.↑인근 15개 카펫 공장의 생산자 자녀 106명이
다니고 있는 러그마크탁아소. 한 반에 10명에서
15명씩 연령별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한다.
◇아동노동은 근절했지만 '산 넘어 산'= 네팔 러그마크재단의 아자이 신흐 칼키(Ajay Singh Karki) 사무총장은 "10년 넘게 활동했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말했다.

"러그마크의 1차적 목표는 아동노동 근절입니다. 그러다 보니 공장 환경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올해부터는 보고서에도 공장 위생환경을 평가하는 항목이 생겨서 앞으로는 네팔 카펫 산업의 전반적인 노동환경 개선에 대해서도 노력할 것입니다."

아동노동, 공장환경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카트만두에만 1000여곳이 넘는 이런 카펫 공장이 있다. 제3세계에는 이와 같은 공장이 또 얼마나 될까. 아동노동만이 노동자 인권문제의 전부는 아닌 듯했다.

카펫공장을 다녀온 날 저녁 우리의 마음은 약간 가라앉아 있었다. 오늘 우리가 본 것이 희망인지, 아니면 아직도 존재하는 슬픔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카트만두의 시끄러운 밤을 또 하루 보내고 있었다.

◇희망대장정팀은?
△김이경(22, 한양대 경제금융 04학번, ODA와치 단원, 한국공정무역연합 자원활동가)
△윤여정(22, 아주대 경영 04학번, 지구촌대학생연합회 전 회장, 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기획단)
△주세운(22, 서울대 지구환경공학 04학번, 서울대 CSR연구회, 한국공정무역연합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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