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지주사 전환..약일까 독일까

머니투데이 진상현 기자 2007.10.2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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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은행 육성 필요성..비효율적 지배구조 우려도

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이 금융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는 등 은행권에 지주사 전환 검토가 줄을 잇고 있다.

전통적인 은행업의 성장 한계를 증권, 보험 등 비은행 부문을 키워 돌파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지주사 형태가 유리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지주사 전환이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는데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면밀한 검토없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실익은 없고 비효율적 지배구조만 양산하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너도나도 지주사 전환 검토=19일 금융계에 따르면 국민은행이 최근 지주회사 설립기획단을 발족하는 등 지주사 전환을 공식화했고, SC제일은행도 신임 데이비드 에드워즈 행장이 지주회사 설립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지방은행 1,2위인 대구, 부산은행도 지주사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모두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매각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외환은행과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제외한 주요 은행 모두가 지주사로 전환하게 된다.



은행들이 지주사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예금, 대출 등 전통적인 은행업의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영향이 크다. 은행들이 최근 몇년새 출자전환 주식 매각 이익, 대손충당금 환입 등으로 대규모 순익을 내는 사이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은행 견제, 증권, 보험 지원으로 옮겨가고 있다.

증권사에 대한 지급결제 허용, 펀드 판매수수료, 카드 수수료 등에 대한 인하 압박, 자본시장통합법 등이 그 예다. 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순이자마진(NIM) 등 수익성 지표도 악화 추세다.

이처럼 우호적이지 않은 영업 환경에서 성장성이 기대되는 비은행 부문을 키워 성장동력을 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주사 전환이 비은행 부문을 키우는데 적합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주회사 전환시 지주사를 기점으로 은행과 비은행 부문이 외형상 수평 계열화 되면서 은행이 직접 자회사를 소유하는 형태에 비해 다른 계열사들이 은행에 종속될 우려가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다.


이 밖에 지주사의 자회사 출자한도가 자기자본의 100%로 은행 30% 보다 높아 인수합병(M&A)에 유리하다는 점, 각 계열사간의 고객정보 활용을 통힌 시너지 극대화 등이 지주사 전환 사유로 거론된다.

◇M&A에 단기적으론 불리= 무분별한 지주사 전환을 우려하는 쪽은 실익은 별로 없으면서 지주사 체제의 단점만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지주사로 전환하더라도 단기적으로는 M&A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지주사 전환시 자회사 출자한도는 '0'에서 다시 시작하기 때문이다. 출범시 자기자본이 100% 자회사 주식에 투자한 형태가 되는 탓이다. 출자한도는 출범 이후 자회사들이 벌어들이는 이익금이 다시 쌓이게 되면 늘어나게 되지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현재 5조원 정도의 출자한도가 있는 국민은행이 지주회사 전환 후 현 수준의 출자한도를 쌓기 위해서는 매년 2조원씩 이익을 올린다고 해도 2.5년이 걸린다. 물론 유상증자, 상환우선주 발행 등 자본확충이나 이익금 등으로 자기자본이 늘어나는 경우에는 자기자본 대비 출자한도 비율이 높은 지주사가 은행보다 유리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M&A만 놓고 보면 지주사 전환은 대체로 단기적으로는 부정적이고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시너지 날까= 지주사 전환만 하면 계열사간 시너지가 창출될 것이라는 기대도 과신일 수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실제로 국내 금융지주사 가운데 증권, 보험이 은행과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신용카드의 경우 오히려 은행 내에 있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시너지는 나지 않고 오히려 업종별 특성을 살리지 못해 기업가치를 더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는 은행 중심 지주사 중 상당수가 은행 출신들로 주요 자회사 CEO들을 채우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대표적으로 신한지주의 경우 통합 신한카드, 굿모닝신한증권, 신한생명 등 주요 계열사 CEO가 모두 은행 출신이다. 보수적인 은행 출신 CEO가 증권, 보험 등에서 어느정도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일부 지주회사 소속 증권사들은 지주사 편입 후 영업이 더 부진하다는 평가가 많다"며 "신한지주의 경우 조흥은행과 LG카드 인수에 성공하면서 부상하고 있지만 수년 후에는 실적 부진이 이슈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은행이 투자은행(IB)을 제대로 키울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많이 없을 것"이라며 "전략적으로 필요한지를 따져보고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지주사 전환을 전제로 접근하는 듯한 인상"이라고 말했다.

◇자리 만들기?=지배구조 문제도 부상할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 출범 초기에 겪었던 것처럼 지주사 CEO와 실질적으로 그룹 영업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은행장 사이에 불협화음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신한지주와 하나지주의 경우 라응찬 회장과 김승유 회장 등 카리스마 있는 개인의 리더십으로 이런 문제를 최소화하고 있지만 국민은행 등 다른 은행들이 초기에 이같은 시행착오를 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주사 전환 검토가 이사회 멤버 등의 자리 늘리기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실익은 적고 지배구조만 복잡하게 만드는 일을 굳이 진행하는 이유를 다른 데서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주회사 전환이 실제로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결과를 낳기 위해서는 지배구조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전제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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