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풍향계]쫓겨난 임원들의 '보복'

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2007.10.15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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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상사를 제2의 인생으로 택한 사나이, 사토이 부사장은 화젓가락으로 심장을 후비는 듯한 발작에 사로잡혀 통곡했다."

 일본 소설 '불모지대'의 한 대목을 보면 온 몸을 바쳐 회사에 충성한 임원들이 자리에서 쫓겨날 때의 심정이 가감없이 묘사돼 있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만 이에 못지 않은 것이 '밀려난' 퇴직 임원들의 한이다.

◇퇴직 임원도 무섭다=국내 굴지의 A그룹에서 회장 관재업무를 맡으며 속칭 '가방모찌'를 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은 전직 임원 B씨. 그는 회장실 부사장까지 역임했지만 자신의 인맥을 심으려는 부회장의 견제로 한직으로 밀려났다.



 A그룹 외곽 계열사 임원으로 옮겨온 그는 '억울하게 밀려났다'는 스트레스 탓인지 종양까지 생겼다. 회사 측은 힘들게 투명하던 그에게 안부전화조차 하지 않았고, 결국 B씨는 '팽(烹) 당했다'는 생각을 굳혔다.

 "(A그룹이) 너무 무성의했다. 오너를 위해 일한 것이 후회가 된다. 내 인생을 걸고 회장과 그룹에 충성해왔는데, 내가 철저히 이용당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일거수일투족 감시하더니 병상에 눕자 터럭만큼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겪은 것을 되갚아주고 싶다."



 B씨는 보관하고 있던 각종 비리서류를 챙겨 검찰에 전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그를 감시하던 계열사에서 B씨의 지인을 통해 이런 기류를 감지했고, 부랴부랴 그룹 차원에서 나서서 B씨를 다독거렸기 때문이다.

 C그룹은 A그룹과 달리 퇴직 임원에게 '보복'을 당한 케이스다. 요직에 있던 임원을 밀어낸 뒤 동향 파악은커녕 그에 대한 나쁜 인사평까지 귀에 들어가게 해 결국 문제가 크게 터졌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상당한 금전적 타격을 입었고, 좋게 유지되던 기업 이미지도 상당히 훼손됐다.

◇배신당한 연인과 퇴직 임원=통상 그룹 회사들은 이같은 내부고발을 막기 위해 퇴직 임원에 대한 예우규정을 갖고 있다. A그룹의 경우 임원에서 물러나더라도 수년간 생일이나 결혼, 장례 등 각종 경조사에 지원금과 인력을 챙겨준다. 이는 B씨의 사례처럼 자칫 소홀히 하면 대형사고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임원들은 퇴직 후 여유있는 삶보다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이 과정에서 자신을 버린 회사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어찌보면 연인에게 버림받은 후 새 사랑을 찾지 못한 이들의 처지와도 비슷하다.

 퇴직 임원들은 과거 모셨던 그룹 오너를 만나면 이런 감정이 눈녹듯 사라진다고 한다. 깨져버린 연인과의 재회는 상처를 되새김질하게 할 뿐이지만 오너에게는 생채기를 치유하는 힘이 있는 듯 하다. 앞서 B씨의 보복을 막은 것은 돈도, 복귀 제안도 아닌 A그룹 회장의 따듯한 말 한마디였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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