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걸음을 멈추면 손을 내밀며 구걸했다. 우리 돈으로 100원도 되지 않는 5타카를 벌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는 릭샤(삼륜차)꾼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거리 풍경. 짧은 거리를
걸어가는 데에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걸어가는 데에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2006년, 방글라데시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라민은행과 이 은행 설립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가 그 주인공이다.
그라민은행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꿔주고 이들이 소득을 높이게 돕는다. 2007년 5월 기준으로 담보가 없는 빈곤층 720만명이 이 은행에서 돈을 대출 받았다. 이들의 상환율은 98.85%. 이들의 58%가 빈곤선을 넘어섰다.
보그라 지역에 사는 도이보티(55)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소작농과 삯바느질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18년 전 그라민은행에서 7000타카(BDT), 우리돈 9만4000여원을 융자 받아 암소를 샀다. 그 후 그의 삶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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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남편은 암소한테서 얻은 우유를 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함께 책장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장마철이면 비가 새는 초가집에서 살던 그와 가족은 지금은 양철지붕에 식수펌프까지 설치된 '번듯한 집'의 주인이 됐다.
↑한 그라민 멤버(대출자)가 은행 융자금으로
재료를 구입해 남편과 함께 바구니를 만들고 있다.
재료를 구입해 남편과 함께 바구니를 만들고 있다.
그라민이 일으키는 진보는 정보기술(IT), 통신산업으로 퍼져갔다. 샤하나치(22)씨는 3년 전, 그라민은행 지점에서 '폰레이디'를 알게 됐다. '폰레이디'는 그라민은행의 융자자금으로 '그라민폰'을 구입해 마을사람들에게 전화를 빌려주는 사업이다.
샤하나치씨는 이 사업으로 1분당 2타카, 약 27원을 사용요금으로 받는다. 릭샤꾼들이 5타카를 벌기 위해 흘리는 땀에 비하면 적지 않은 수입이다. 이제 '그라민폰'은 이동통신전화기 시장의 40%를 점유하면서 부동의 1위 기업으로 떠올랐다.
그라민의 실험은 은행, 통신회사에서 끝나지 않고 요거트회사, 안과병원, 재생에너지회사로 이어지고 있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의 '삼성', 'LG'에 버금가는 브랜드파워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라민 계열사들의 목적은 여타 기업들과는 다르다. 이들은 '가난 없는 세상'을 일구겠다고 한다. 이것을 유누스는 '사회적 비즈니스' 즉 사회적 기업이라고 말한다. 1997년 2월, 마이크로크레디트 정상회담에서 유누스는 이렇게 연설했다.
↑지난해 서울평화상
수상차 방한한
무하마드 유누스
수상차 방한한
무하마드 유누스
라이트 형제 못잖게 혁명적인 '자본'과 '자본가'의 실험이 지금 방글라데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세 젊은이, 80일간 아시아 대장정
"하루 1弗로 사는 빈곤 퇴치 희망을 찾아"
이메일 한 통으로 시작된 희망대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