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남북경협, 착각하지 맙시다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국장 2007.10.08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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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는 남북 정상회담 취재와 보도로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방북단을 쫓아 북으로 간 기자들도 고생이 많았지만 정상회담 취재를 위해 시내 호텔 프레스센터에 배치된 기자들은 식사도 거르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채 며칠 동안 현지 정상회담장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는 대형 스크린과 모니터 앞에서 하루에도 수백 장의 기사를 써야 했습니다.
 
기자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지만 언론사 입장에서 남북정상회담은 고생한 것에 비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장사였습니다. 기대한 '정상회담 특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 6월 정상회담 때는 회담을 전후해 재계 대표 기업들과 경제단체, 공기업 등에서 회담을 축하하고 남북협력을 다지는 취지의 축하광고를 줄줄이 냈는데 이번에는 현대그룹 한 곳에서만 하고 말더군요.
 
다른 기업에서도 정상회담 관련 광고를 준비하다가 취소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마지못해 방북 수행단에 포함돼 어디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따라가긴 했지만 뭐 좋은 일이라고 돈을 들여가며 축하광고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판단을 했을 것으로 짐작이 갑니다.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겠지요. 몇달 남지 않은 정권 말기에, 점증하고 있는 야당의 차기 집권 가능성에다 광고도 일종의 독자들에 대한 약속임을 감안하면 괜히 재계 스스로 발목을 잡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건희 회장도 말하고, 정치인들도 늘 주장하고, 언론도 걸핏하면 하는 말이 있지요. 남북 경제협력은 국가와 민족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요. 기업의 논리, 경제의 논리로 수지타산을 계산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민족이 먼저냐 계급이 먼저냐, 민족적 이해관계와 기업의 이해타산 중 어느 게 우선돼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인문사회과학의 해묵은 논쟁거리입니다. 논쟁을 다시 들춰낼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앞으로는 상대적으로 북한체제에 좀더 호의적인 여당이 재집권하더라도 민족적 관점에서, 민족적 이해를 우선시해 개별 기업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경협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입니다.
 
이 대목에선 지금의 노무현 정부 당국자들도, 퍼주기식 경협은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한나라당도, 재계 총수들도, 또 김정일의 북한당국도 정직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물론 과거엔 시혜적 차원의 경협이 있었지요. 김대중 정부 때 정상회담 대가로 언더테이블로 지불된 4억5000만달러가 그랬고, 옛 현대가의 정주영·정몽헌 회장이 그랬지요. 그것으로 시혜적 경협은 끝입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인사가 징역살이를 하는 등 고초를 겪었고, 현대그룹은 분해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누가 감옥에 가고, 기업이 망하는 위험을 감수하고서 대북경협에 나설까요.
 
믿을 만한 숫자는 아니지만 앞으로 남북경협에 소요되는 재원이 적으면 10조원, 많으면 60조원까지 든다고 하는데 이런 자금을 그냥 줄 수는 없습니다. 기업이 부담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목적세를 신설하거나 남북협력기금을 조성하는 것으로도 한계가 분명합니다. 세금이나 기금은 모두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해외에서 자금을 동원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어느 해외 구호기금에서 이런 거액의 자금을 대겠습니까.
 
미국이나 일본 기업들조차 오래전부터 도로나 항만을 개발해 주고, 대신 광산 채굴권이나 항만 및 도로 운영권을 갖는 방식의 북한 경제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정상회담 기간중 논의된 신의주 남포 앞바다인 서한만의 유전개발과 관련해서 중국은 이미 2005년에 북한과 해상원유 공동개발 협정을 체결해 뒀습니다. 북한의 추정대로 50억~450억배럴의 석유가 본격 생산될 경우 개발의 혜택은 고스란히 중국에 돌아갑니다. 지난해 북한과 중국의 교역규모는 17억달러로 남북한 교역량 14.5억달러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정부는 기업들한테 남북경협에 나서라고 다그쳐서도 안 되고 다그칠 필요도 없습니다. 기업들도 마치 대북 경협사업이라고 하면 공짜로 베푸는 것처럼 착각해서도, 생색을 내서도 안됩니다. 현대그룹의 금강산 관광이 지금 잇속없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이 중국보다 인건비가 비싸고 손해를 보는 데도 민족적 차원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습니까.

남한이 대북경협에 나서지 않는다면 북한은 중국의 경제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통일여부에 관계없이 남한 기업들에겐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그놈의 샌드위치 신세가 더 심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북경협은 DJ나 노무현을 위해 하는 게 아닙니다.한민족 공동체를 위해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모두 착각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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