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 CEO' 조나단 슈워츠가 사는법

머니투데이 김경환 기자 2007.10.06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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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CEO]썬 수장으로 공룡기업의 변화 이끈다

조나단 슈워츠(42)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에서 개인 블로그(blogs.sun.com/jonathan) 운영자로 잘 알려져있다.

오라클의 래리 엘리슨이 요트로 유명하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특유의 터틀넥 스웨터로 잘 알려진 것처럼 슈워츠는 블로그에 올리는 '의견'으로 유명하다.
'썬 CEO' 조나단 슈워츠가 사는법


슈워츠의 블로그에는 그의 가족과 일, 음식, 와인에 대한 허심 탄회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그가 블로그를 운영하는 배경에는 그가 살아온 삶이 녹아있다.



슈워츠가 올리는 글들에는 뜨거운 네티즌들의 반응이 이어지고 있으며, 인터넷 상에서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슈워츠는 대기업인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수장이다. 그러나 미래의 준비된 사교적인 CEO의 모습보다 오히려 내성적이고 학문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끄럽지 않게 자라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슈워츠의 아버지는 대공황 시절 브롱스 빈민가에서 자랐지만 뉴욕 스튜이브산트 고등학교와 뉴욕 씨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그의 어머니는 영국과 아시아계 혼혈로 영국에서 자라났다.

슈워츠는 부모님들이 용기로 충만하신 분이라고 밝혔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슈워츠에 대해 갖는 기대는 크다. 슈워츠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데 초첨을 맞추며 살아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공부만 잘하는 외톨이였다. 워싱턴DC와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 자주 이사를 다녔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어려웠다. 그의 아버지는 캘리포니아 시스템 대학교 교수와 국무부 정보 분석가라는 직업을 동시에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주 이사를 다녔다.


슈워츠는 친구를 사귀는 대신 좋은 학점을 받는데 온 힘을 기울였다. 익명을 요구한 동급생은 슈워츠를 '머리좋은 왕따'로 기억했다.

그는 건축 설계사가 되기를 원하며 카네기 멜론 대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1년후 학교가 요구하는 프로그램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점을 느끼고 웨슬리언 대학교로 편입했다. 이 대학교는 4학년이 될 때까지 특별한 전공을 요구하지 않아 좀더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다.

대학시절 룸메이트이자 절친한 친구인 닉 라스무센은 슈워츠가 첫번째 경제학 수업에 대해 열정적인 모습으로 말하는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고 밝혔다.

슈워츠는 2학년에 자기가 나갈 바를 결정했다. 집안에서 지원할 돈이 떨어지자 맥킨지로부터 기업 후원 장학금을 받았다.

슈워츠는 졸업후 맥킨지에 경영컨설턴트로 합류했으며, 기업 고객들의 경영혁신 성과 등에 큰 감명을 받았다. 슈워츠는 당시 "'남들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잘할 수 있어'라고 맘속으로 되뇌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다 슈워츠의 인생이 바뀌는 일대 발생했다. 1986년 기차로 여행을 떠나던 도중 볼티모어 인근에서 열차끼리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 거의 죽다 살아난 것. 그는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꾼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슈워츠는 그 일이 회사 경영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만든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어떤일도 이보다 최악 일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기회는 4년후 그의 친구가 넥스트 컴퓨터에 납품하는 소프트웨어 회사인 '라이트하우스 디자인'을 창립하면서 왔다. 그는 운영책임자로 합류했다. 라이트하우스 사람들은 회사가 수익을 낼때까지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다들 다짐했었다. 슈워츠의 트레이드마크인 꽁지머리의 기원은 바로 여기서 탄생했다.

'썬 CEO' 조나단 슈워츠가 사는법
넥스트컴퓨터는 애플을 떠났던 스티브 잡스가 창설한 회사다. 당시 슈워츠는 넥스트 컴퓨터가 있는 실리콘밸리로 떠나 주문을 받아내기 위해 넥스트컴퓨터의 로비에 수일동안 앉아있기도 했다. 결국 슈워츠가 넥스트컴퓨터의 경영진들을 위해 미시즈 필드 쿠키를 사서 선물하면서 그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마침내 넥스트의 2만5000달러에 달하는 수퍼 컴퓨터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계약을 따냈다. 당시 잡스는 개당 99달러짜리 싼 가격에 프로그램을 구입하길 고집했다.

그러나 슈워츠는 이를 거절했고 잡스에게 "당신의 컴퓨터를 개인용컴퓨터(PC) 가격에 판매하라면 하겠는가"라고 말하며 1000달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고집끝에 라이트하우스는 넥스트의 가장 성공한 소프트웨어 공급업체로 자리잡았다. 당시 많은 기업들이 넥스트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기를 원했으며, 라이트하우스가 이를 뚫어낸 것이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1996년 라이트하우스를 2200만달러에 인수하면서 슈워츠는 썬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제품 매니저 자리에 머물렀지만 이후 여러 자리를 거치면서 2002년에는 썬의 소프트웨어 부문 총괄 자리에 올랐다.

슈워츠는 "10년동안 11개의 직책을 거쳤다"면서 "자리를 바꿀때마다 회사에 가치를 증진시키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슈워츠가 다른 이들의 공을 가로채는데 능숙한 정치적 인간이라는 지적도 제기했다.

그가 걸어온일이 어땠건 슈워츠는 지난 2004년 스캇 맥닐리 CEO에 의해 후계자로 선정됐다. 지금은 썬의 회장인 맥닐리는 슈워츠에게 최고운영책임자(COO) 자리를 맡기기로 했다. 그러나 슈워츠는 맥닐리가 직원들 모임에 나오지 않는데 동의해 달라고 말해 그를 놀래켰다.

맥닐리는 처음에는 화들짝 놀라 이를 거절했다. 그래도 슈워츠는 꿋꿋히 자기의 자리를 지켰고 어려운 일들을 묵묵히 수행해냈다. 솔라리스 운영 체계의 소스 코드를 공개해 썬의 소프트웨어 사용처를 넓힌 점도 당시 그의 업적이다.

결국 2006년 4월 맥닐리는 슈워츠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를 CEO로 앉혔다. 그리고 직원들 모임은 물론 경영진들이 모이는 연차 총회에서도 모습을 비키기로 했다. 슈워츠는 "맥닐리가 어려운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중요한 자리를 넘겼다"면서 "그에게는 매우 고통스런 결정이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슈워츠는 CEO가 된 첫주에 휴렛팩커드(HP) CEO인 마크 허드, IBM CEO인 샘 팔미사노, 델컴퓨터 회장인 마이클 델을 방문하고 제휴 가능성을 논의했다.

이는 경쟁사들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취해온 맥닐리와 대조되는 것이다. 맥닐리는 썬과 협상하고 있는 기업들에 대해 불편한 말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맥닐리는 "슈워츠가 틀렸더라도 그가 CEO기 때문에 그가 옳다"고 밝혔다.

앞으로 슈워츠가 이끌 썬의 변신이 궁금하다. 슈워츠는 취임 직후 폐쇄적인 기술 정책ㅇ르 개발적으로 전향하고 있다. 그리고 마이크로스프트와 윈도 서버 OEM 계약을 체결하는 등 5개 부문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그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종목 코드를 'SUNW'에서 '자바'(JAVA)로 바꿨다. 자바가 썬이란 회사명보다도 일반 대중들에게 더 잘알려졌다는 이유에서다.

또 IBM과 서버 분야에서 제휴키로 했다. 솔라리스 소스 오픈을 통해 솔라리스 운영체계를 IBM 서버에서도 구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회사의 논란을 뚫고 "다른 플랫폼에서도 구동할 수 있도록 하면 더 많은 고객들을 만날 수 있고, 이는 궁극적으로 더 많은 기회로 연결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의 파격적인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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